[기고] 김재영 ㆍ 전 청주고 교장·칼럼니스트

▲ 김재영 ㆍ 전 청주고 교장·칼럼니스트
봄을 시샘하는 날씨 탓인지 가정과 사회에서, 그리고 정치권에서 들려오는 파열음(破裂音)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뜰 앞에는 산수유가 봄을 알리더니 목련도 개화를 준비하고 봄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고 있다.

행(幸)과 불행(不幸)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인생이요, 인생은 희로애락의 교향악이라고 한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추운겨울에도 머지않아 봄이 오리라는 기대 속에 어렵고 힘든 일을 이겨내고 봄을 기다리며 살아왔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와도 봄답지 않다는 말로 전한(前漢)의 왕소군(王昭君)은 원제(元帝)의 궁녀로 절세미인이었으나 흉노(凶奴)와의 화친정책에 의해서 흉노 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불운의 처지를 호지무화초 춘래불사춘(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고 읊었다.
독일의 시성(詩聖)인 괴테는 희망이 있는 곳에 행복의 싹이 움 튼다고 했다.

봄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계절이요, 채근담(菜根潭)에 부자자효(父慈子孝)라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히 그리해야 할 일이라고 했으나 최근 들어 조금만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부간에 갈등이 생겨도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이 드신 부모님과 어린 자식들을 팽개치고 가출 하는가 하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서 배우자를 살해하는 일들이 발생하여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하고 오랑캐 땅에서 불운의 세월을 보내던 왕소군 보다도 우리들의 가슴은 더 얼어 붙어있다. 오늘을 도덕불감증시대,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 한다.

사기(史記) 소진전에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고 옛날 노(魯)나라에 미생이란 젊은이가 살았는데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과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려다 시간이 지나도 여인은 오지 않고 폭우가 내리자 물에 휩쓸려 죽었다는 고사(故事)에서 유래한 말로 미련하고 우직하게 약속을 지키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미생과 같이 우직 할 만큼 선인(先人)들은 믿음과 약속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고, 세속오계(世俗五戒)에도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고 벗과의 사귐에도 믿음을 강조했다.

논어(論語)에 무신불립(無信不立)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고 했고, 주충신(主忠信) 이라고 성실과 믿음을 근본으로 삼으라고 했는데 우리는 서로가 믿지 못하는 불신(不信)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믿으면 낭패를 보는 게 오늘의 실정인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해법이 없다.

이혼의 증가로 시작해서 가정의 부재,사회적 일탈행위의 증가, 내일의 동량인 청소년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익히며 먼 훗날 인생을 살아가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벗들을 사귀며 학교생활이 이루어 져야 할 터인데 학교현장에서는 동급생 간에 언어폭력이나 집단폭행을 일삼아 자살에 이르게 되는 일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오늘의 우리에겐 경제적인 문제에 앞서 가정과 사회에서는 물론 학교에서도 믿음을 되찾아 서로가 사랑하는 가운데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이다.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청소년 활동과 대화의 기회를 활성화 하여믿음 속에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고 공동체의식을 배양해야한다. 논어(論語)에 不念舊惡이라고 했다.

이제 지난날의 갈등을 봄바람에 실어 보내고 서로가 이해하고 사랑하는 가운데 꽃들의 경연장인 봄 언덕에 올라 손에 손 잡고 희망의 노래를 부르면 가정에도 골목길에도 학교에서도화기애애한 가운데 웃음이 넘쳐흐르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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