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내재된 확률

[충청일보]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땐 하늘에서 돈벼락이라도 뚝 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이는 게 사실이다. 그 돈벼락이 복권 아니고 무엇이랴. 돈이란 노력해서 피땀 흘려 벌어야만 가치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뼈 빠지게 노력해도 도무지 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사립대학 일 경우 천만원대를 육박하는 등록금이 그렇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가 그렇다.

실은 복권 당첨금으로 졸지에 큰돈을 만지게 된 사람치고 그 돈으로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사람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별반 보지 못했다. 갑자기 큰돈이 생기자 흥청망청 쓴 탓에 가정이 파괴되고 당첨자의 인생이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해외 토픽이 그것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로보아 행운은 잘 다스리는 자 만이 오래 소유 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만큼 행운은 흔하지 않고 귀하기에 말 그대로 행운 아닌가. 그럼에도 우린 번갯불에 사람이 다칠 확률이라고 해야 할 행운을 부여잡기 위해 오늘도 복권 방 앞을 서성이곤 한다.

나는 행운보다 확률에 더 관심 깊다. 어떤 행운도 확률이 없으면 잡을 수 없다. 확률은 수학의 용어로써 그 속엔 법칙에 따른 필연보다 우연이 내재 돼 있어서 신비롭기 조차하다.

그 탓인지 수학사(數學史)를 살펴보면 사인이나 코사인과 같은 삼각함수에 대한 연구가 이미 기원전부터 이뤄진 반면 확률은 16세기 카르다노(1501-1576)와 타르탈리아(1500-1557)가 도박판에서 제기된 게임을 위해 흥미로 연구 한 게 확률의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이 탓인지 고대 유적지에서 주사위가 발견 되는 점으로 보아 확률 역시 일찍이 역사에 등장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기원 전 3500년 경 주사위 놀이에 사용 된 것으로 보이는 양의 뒤꿈치 뼈가 발견 된 게 그렇고 기원 전 300년 경 바빌로니아 유물인 정육면체 모양의 담황색 도자기 역시 주사위로 사용 된 게 그것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도 확률에 대한 관심이 높았나 보다.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궁중 놀이에 사용된 14면체 주사위인 '목제주령구(木製 酒令具)'로 그것을 미뤄 짐작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결코 남의 것을 넘보지 않는 심성이 가슴 깊이 배어있어 자손이 과거 시험을 치루거나 집안 대소사가 있을 경우 정한수를 떠놓고 먼저 신께 염원을 비는 것으로 확률을 바랐었고 행운을 빌었었다. 하다못해 집안에 새 생명이 태어나도 정한수를 떠놓고 삼신 할미한테 빌고 또 빌었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그 시절 태어난 아이들이 마을을 휩쓰는 역병을 견디지 못하고 일찍 사망 하는 것을 염려한 나머지 온갖 병마를 너끈히 이기고 무병장수하기를 빌었고 총명과 지혜를 지녀 훗날 남의 귀감이 되는 재목으로 자라길 빌었었다. 이 때도 조상님들은 확률을 늘 염두에 두었으리라.

요즘은 어떤가. 행운은 꿈만 꾸면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고 착각하기 예사 아닌가. 노력하지도 않고 정성을 들이지도 않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심보는 어찌 보면 도둑 심보나 진배 없건만 복권이 우리 앞에 출현하면서부터 너도나도 돈 벼락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그토록 염원해 복권 당첨의 행운을 얻었다면 그 행운에 감사해야 하는데 무슨 연유인지 그 행운을 지키지 못하니 이래저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인가보다. 하긴 나 또한 한 달에 500만 원 씩 지급된다는 연금 복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오늘도 행운의 확률을 떠올리며 복권 당첨의 환상에 수시로 사로잡힘을 솔직히 고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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