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오늘도 저녁 식사 후 산책 겸 운동을 가려고 현관문을 여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소나기도 올 것 같은데 오늘은 운동을 가지 말자.',
'아니야, 오늘 안 가면 다음에 또 가기 싫어지고 게으른 습관이 생긴다.'
'혹시 소나기를 만날지도 모르니 우산을 가져가자. 아니다. 천둥, 번개도칠 줄 모르니 오늘은 가지 말자.'
또 내 마음속으로 싸우고 있었다. 결국 몇 발자국 가다 되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칡과 등나무가 얽히다

'이 기회에 읽던 책이나 보자.', '아니야, 모처럼 재미있는 TV나 보자.'
마음속에서 거듭 싸운다. 야속하다. 이래서 갈등(葛藤)이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갈등이란?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명확한 뜻을 알고자 국어사전을 찾아본다. 사전도 인터넷으로 볼까? 책꽂이에 꽂혀있는 사전으로 볼까? 또 싸운다. 결국 인터넷이 이겼다. 책꽂이를 보니 계면쩍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이고 같은 말로 '갈등상태'이란다. 또 '갈등상태'를 찾아보니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요구나 욕구, 기회 또는 목표에 직면하였을 때, 선택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라고 씌어 있다.

오늘 저녁 사소한 일 같지만, 이것도 갈등상태임이 틀림없다.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 뿐 아니라 자신의 처한 환경과의 대립 속에서도 일어나고, 또한 자신의 내면 속에서도 무수한 갈등을 겪는다고 한다. 나 자신과도 그러한데 하물며 상대방이나 집단 사이의 갈등은 다양하고 난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힌다?' 무슨 유래일까?


-인생은 시소와 같아

갈(葛)은 칡 갈자이며 등(藤)은 등나무 등자로서, 칡은 다른 식물을 왼 쪽으로 꼬면서 감싸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 쪽으로 감싸면서 올라가기 때문에 한 식물에 칡과 등나무가 함께 자라게 되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뒤 엉키게 되어서 서로 풀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리고, 심하면 둘 다 자라지 못하고 고사(枯死) 하는 것에서 '갈등'이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한낱 식물의 세계도 그러한데 사람들의 세상은 오죽하겠나. 그래서 법구경(法句經)에도 '애욕은 칡이나 등넝쿨처럼 얽힌다.(愛結如葛藤)'라 했나보다.

융 분석가이자 저명한 심리학자인 로버트 A. 존슨도,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란 저서에서,
"내가 하는 일은 시소의 오른 편에, 내 마음은 시소의 왼편에 있다. 오른편의 삶은 사회적으로 드러난 외면의 삶이다. 왼편의 삶은 내 마음속에서 진행되는 이면의 삶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남들이 보는 나의 인생드라마는 오른편의 것이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또 한 편의 드라마가 상영 중인 것 같다. 이 두 개의 드라마가 매일 시소게임을 한다. 일이 즐거우면 시소는 경쾌하게 움직이고 흥미진진하지만, 즐겁지 않으면 시소는 무겁게 움직이고 삐걱거린다.

이제 이 시소게임을 잘 해야 한다. 오른편 삶의 무게를 줄이고 솎아내고, 왼편의 욕심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으면 욕심도 줄어들어 즐거워지고 좌우의 균형이 맞게 되어, 눈만 뜨면 전개되는 갖가지 갈등상황도 지혜롭게 다스려지지 않을까!

/김진웅 청주 경덕초 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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