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이성의 산물이고, 예술은 감정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두 학문은 매우 다르게 생각되었다. 대부분 이과 학생들은 수학과 과학을 집중적으로 배우지만, 예술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창의성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과학과 예술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노력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더라도 탁월한 연주가는 곡에 대한 자신의 독창적인 해석을 한다.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에 참여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를 때 자신의 감정을 몰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종종 카메라에 잡힌다. 기계나 로봇만큼 인간이 정확하게 음을 낼 수 없지만, 기계음을 우리는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예술가의 재해석이라는 창의성을 요구한다.

과학 역시 자연세계에 대한 과학자의 창의적인 해석을 필요로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 안에 음전하를 띤 입자와 양전하를 띤 입자가 어떻게 존재할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과학자 톰슨은 건포도가 푸딩 안에 들어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런 형태의 원자 모형을 제안하였다. 과학계에서는 그가 상상한 원자 모형의 가치를 인정하여 1906년에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 후에도 원자 모형에 대한 과학자들의 상상력은 계속되어 최근에는 다른 형태의 원자 모형을 과학에서 배운다.

뉴질랜드의 예술사학자 데니스 더튼은 과학과 예술의 중요한 특징을 '상상 경험'이라고 하였다. 이는 실제로 위험을 무릅쓰고 무언가를 하는 대신 상상을 통해 그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 경험 능력은 인류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진화 과정에서 선택되었다고 한다. 호랑이 같은 맹수와 맞서 싸워 이러저러하게 이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그 상황을 떠올린다면, 직접 호랑이와 싸우지 않고서도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충분한 상상 경험을 가지고 성공적으로 사태를 극복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진화생물학자들은 상상 경험 능력이 뛰어난 예술가나 과학자에게 여성들이 끌리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예술가와 과학자의 뛰어난 창의력은 미래의 후손이 잘 살 수 있는 보증으로 여성들에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여성의 선택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자 중에 바람둥이가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술가 중에는 바람둥이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는데, 여성의 유혹에 약해서라기보다는 유혹하는 여성이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최근에 예술과 과학의 창의성이 일맥상통한다는 시각에서 예술과 과학을 융합시키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고종 황제의 증손녀인 이진씨가 미국 MIT대학 학생과 공동으로 기상 관측 풍선에 도자기를 담아 대기권 상공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하는 등 예술가와 과학자가 한 팀을 이루어 공동 과제를 수행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 과학영재학교나 과학고등학교, 과학중점학교에서 예술과목의 시간을 확대하고, 과학고와 예술고 중에서 과학·예술 통합교육을 희망하는 학교를 과학예술영재학교 또는 과학예술고등학교로 지정한다고 한다. 이러한 새로운 변화가 진정으로 창의성을 높이고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는 기폭제로 연결될지 지켜볼 일이다.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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