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계약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배상 필요없어"

부동산 거래에 있어 계약서에 기재된 계약금이 지급되지 않은 경우에는 해약금이나 위약금의 부담없이 매매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정모씨는 2005년 6월8일 a공인중개사로부터 김씨 소유의 아파트가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듣고 중개인과 함께 b중개사에 가서 김씨 장모인 이모씨와 대리방식으로 아파트에 관한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매매대금은 5억원으로 계약금은 계약과 동시에 지불하고 해제시 계약금의 배액을 배상한다는 계약서를 작성했으나, 계약금이 준비되지 않아 당일 300만원을 중개사무소 계좌로, 나머지 5천700만원은 김씨 계좌로 송금하기로 하고 우선 약 380만원이 예치된 자신 명의의 통장을 중개사무소에 맡겼다.

김씨 장모 이씨는 계약을 체결한 당일 밤 해외에 체류중인 김씨 부부에게 매매사실을 알렸으나, 김씨 부부는 아파트를 처분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다급해진 이씨는 그 다음날인 9일 오전 중개사무소에 가서 "매매계약이 무효이니 계약금을 넣지 말라고 정씨에게 전해달라"고 했으나, 계약 파기의 내용을 들은 정씨 남편은 6천만원을 계약서에 기재된 김씨 계좌로 송금했다.

이씨는 당일 오후 6천만원을 수표로 인출해 정씨에게 되돌려 주려 했으나, 정씨가 이를 거부하자 공탁했고 정씨는 이후 이를 찾아갔다.

정씨는 김씨 측이 계약을 어겼다며 소송을 냈고, 1심은 "이씨가 김씨의 대리권이 없이 매매계약을 체결한 잘못이 인정된다"며 2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민사17부(곽종훈 부장판사)는 정씨가 김씨와 이씨 등을 상대로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6일 밝혔다.

재판부는 "매매계약 체결에 있어 매수인이 계약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했는데도 이를 교부하거나 실제 그와 동일한 이익을 받은 단계에 나아가지 못한 상태라면, 계약금계약은 요물계약(要物契約·당사자 중 한쪽이 물건의 인도 및 기타의 행위를 해야 성립되는 계약)이기 때문에 아직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어 "약정에 따른 계약금이 지급되기 전까지는 계약 당사자의 어느 일방이든 그 계약에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이를 파기할 수 있고, 이 때 그 해제를위해 매수인이 계약금을 지급할 의무를 여전히 부담한다거나 해제에 대한 책임으로 위약금을 지급할 의무가 생긴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정씨가 부동산중개인에게 380만원이 예치된 통장을 맡긴 것만으로 계약금의 일부가 지급된 것으로 볼 수 없고, 무권대리인(無權代理人·대리권이 없으면서 대리권을 행사한 사람)에 의해 체결된 계약이 무권대리 이외의 사유로 효력을 상실했을 경우 계약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이씨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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