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며 운명(運命)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과연 운명은 정해져 있을까? 아니면 노력에 의해 개척해 나갈 수 있을까? 만약 인생의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아무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이미 정해진 운(運)을 따라 흘러가게 되기 때문에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면 모든 것이 선택에 의해 바뀌어 진다면 가난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운명에는 이미 정해진 부분과 개척해 나갈 수 있는 부분, 양 측면이 같이 존재한다. 정해져 있는 부분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진 룰대로 흘러가게 되며,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선택의 유무에 따라 다른 경로를 갖게 되는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새봄이 오고, 무더운 여름이 지나면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오게 된다. 사계절은 그렇게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자연의 법칙은 우리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관계없이, 결실의 계절 가을이 지나면 어김없이 겨울이 오게 되어 있다.

겨울은 우리가 착한 일을 한다고 빨리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쁜 일을 한다고 늦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인간이 어떠한 희망을 갖거나 어떠한 행위를 하든 관계없이, 착한 사람에게든 나쁜 사람에게든 오직 겨울 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봄에게 양보하며 물러가게 되어 있다.

그럼 우리의 노력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과연 정해진 대자연의 흐름 속에 우리의 노력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물론 우리의 노력으로 이렇게 정해진 겨울을 일찍 끝내거나 여름으로 바꿀 수는 없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적절한 노력을 통하여 겨울을 덜 춥게 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즉 주어진 겨울 자체를 여름으로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어도 선택과 노력에 의해 겨울을 더 춥게 보낼 수도 있고 더 따듯하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계절은 아직 겨울인데 배가 고프다 하여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다면 그것은 부지런함이 아니라 어리석음일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와야 밭 갈고 씨앗 뿌릴 수 있는 것이다. 아직은 겨울인데 마음이 급하다하여 언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린 어리석은 농부를 우리는 결코 부지런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풍성한 계절이다.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린 성실한 농부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봄에 게으름 피우고 빈둥거린 사람에게도 가을은 풍성한 계절이다. 산에는 과일이 즐비하고 들에서 이삭만 주워도 나름대로 풍성하기는 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대자연이 불공평하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가을은 게으름뱅이에게도 먹을 것을 제공하기엡.

그러나 비록 가을이 누구에게나 풍성한 계절이기는 해도 봄에 씨앗을 뿌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똑같은 풍요를 누릴 수는 없다. 즉 준비하고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은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고, 게으른 사람은 비록 계절에 의한 풍요를 누리기는 해도 그 정도에 차이가 있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겨울' 이나 '가을' 이라는 계절은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흘러가는 대자연의 법칙이다. 겨울의 '추위'와 가을의 '풍성함'은 이미 대자연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지 우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자연에 반복되는 사계절의 규칙이 있듯이 사람의 삶에도 반복되는 사계절 규칙이 있다. 이러한 사람 개개인의 사계절을 알고 제대로 활용한다면 한번 주어진 삶을 보다 현명하게 살아 갈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정해져 있는 개인 고유의 사계절 흐름인 '석하리듬'을 10년 주기 성패리듬으로 규명하여 특강이나 상담 등을 통해 보급하고 있다.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나온 삶의 궤적을 체크해 본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신의 인생사계절인 '석하리듬'을 알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보다 더 지혜로운 삶을 살아 갈수 있을 것이다.




/소재학 미래예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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