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은 우중충한 날씨 탓에 걸핏하면 마음이 침잠하곤 했었다. 하지만 언제 그런 날씨였느냐 싶게 요즘은 무척 청명하다. 어느새 가을이 온 것이다.

가을의 초입인 9월엔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끼어서인지 왠지 몸과 마음이 몹시 분주하다. 어느덧 들녘엔 벼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고 이른 곳에선 벌써 벼를 추수했다는 소식도 꿈결처럼 접하였다.

여름 내내 비가 아무리 쏟아져도 하늘이 온통 물기에 젖었어도 자연의순리는 하늘도 어길 수 없었나보다. 그토록 엄청난 물기를 품었던 하늘도 계절의 순리 앞엔 드디어 무릎을 꿇은 듯하다. 하늘은 금세라도 파란 물감을 뚝뚝 흘릴 것처럼 푸르고 드높다.

올핸 지난여름 너무 비에 젖어 지내서인지 가을을 맞는 감회가 여느 해와 다르다. 이즈막 쏟아지는 가을 햇살이 마치 황금 햇살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여 그동안 눅눅했던 마음자락을 가을 햇살에 내다 말리련다. 그리하여 여름 내내 가슴 속에 잔뜩 끼었던 마음의 세진(世塵)도 깨끗이 털어내고 싶다.

어디 이뿐이랴. 올 9월엔 추석을 맞아 고단한 삶의 시름일랑 남편 고향의 품 안에서 모두 달래고 올까보다. 솔직히 주부로서 명절 증후군은 없지 않아 있지만 추석 때 남편 고향인 시댁을 찾으면 남편은 잠시라도 삶의 고달픔을 잊는 듯 한 눈치다. 여자는 결혼하면 그 집 귀신이란 말이 맞는 것처럼 나도 덩달아 시댁만 가면 마음이 참으로 푸근하다. 남편 고향인 시댁을 갈 때마다 시어머님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시어머님은 홀로 4남매를 행상으로 훌륭히 키운 분이다. 남편 고향엔 아직도 그분의 잔상이 남아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지금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지난날 시어머님이 겪으신 삶의 고통에 어찌 비하랴. 이젠 고인이 된 시어머님이다. 젊은 날 일찍이 홀로되어 손수레 한 대 살 돈이 없어 사과를 궤짝 째 머리에 이고 행상을 했다는 어머니의 고생담은 사소한 어려움 앞에서도 걸핏하면 무너지는 우리들에게 시사 하는 바가 자못 큰 게 사실이다.

삶의 고통 속에서도 시어머님의 희망은 자식들이었다고 한다. 앞이 안 보일만큼 절박함 속에서도 오로지 자식들을 당신의 등불로 삼았던 시어머님이다.

남편 고향 집엔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목 백일홍 나무가 빨갛게 꽃을 피우고 있고 담장 곁에 붉게 피어있는 맨드라미, 코스모스가 시어머니 대신 우리를 반길 것이다. 활짝 열어젖힌 삽작문을 들어서면 비록 맨발로 뛰쳐나오시던 시어머님은 안 계시지만 그곳에서 추석날 우리 아이들의 뿌리를 재확인 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을 생각하니 명절 증후군도 이젠 두렵지 않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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