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니 삶이 어깨를 짓누를 때마다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끙끙댔던 것 같다. 이미 얹힌 무게를 줄일 수는 없지만 덜 느낄 방법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오래전에 들은 시동생 부부가 신혼여행지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간 시동생과 동서는 한 마을에서 소꿉놀이하며 자란 사이로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한 시골 총각, 처녀였다. 호텔에 가서야 신혼부부에게 필요한 소품을 챙기지 못한 게 생각났고 이 문제로 말다툼을

심하게 했단다. 화가 난 신부는 혼자 밖으로 나와 호텔 지하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행사장에 갔단다. 때마침 진행하던 사회자가 음악과 춤으로 분위기를 띄운 다음 퀴즈를 내는 시간이었단다."자, 여러분. 이 퀴즈를 맞히는 커플에게는 타지 않는 프라이팬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당시만 해도 타지 않는 프라이팬은 꽤 비싸서 모두들 사회자에게 집중했다고 한다."아픔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도 정답을 모르는지 서로 눈만 껌벅이고 있을 때, 신부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큰 소리로 외치더란다.

"포경수술!" "오우! 정답입니다. 신부님,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방금 전에 신랑과 말다툼한 건 까맣게 잊고 무대 위로 뛰어올라가는 신부를 본 신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입만 벌리고 있었단다.

"어디에 사시는 누구시죠?" "공주에 사는 임순란입니다." "신랑은 그런데 왜 안 나오시죠?" "저기요! 저기, 있어요. 강수씨, 빨리나와!" "네, 아주 잘 어울리는 커플에게 당첨 선물로 프라이팬을 드리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여기저기서 박수갈채가 터지고, 신부는 신이 나서 연신 싱글벙글 거렸다고 한다. "자 그럼 이번 상품은 '프라이팬'보다 더 비싼 '가습기'입니다. 대신 문제가 좀 어렵습니다. 흠흠, 여기 김강수, 임순란 커플이 아이를 열 명 낳았습니다. 열 명의 아이들 아빠를 일곱 자로 줄이면?" 숙연한 정적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눈동자 굴리는 소리만 들리는가 싶더니, "저요!" 하고 객석에서 퉁퉁한 남자가 손을 번쩍 들고 앞으로 성큼성큼 나오더란다."어디 사는 누구십니까?" "수원에 사는 이경진입니다." "아, 네. 그럼, 정답은?" "네. '강수새끼 십 새끼!' 입니다." 객석에서 시작한 웃음이 '와그르르' 무대 위까지 올라 왔단다. 가뜩이나 '포경수술'이라는 말을 많은 사람 앞에서 거리낌 없이 내뱉은 신부에게 화가 난 신랑은 팔을 둥둥 걷어붙이고, 이경진씨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단다. "너 이 자식, 날 언제 봤다고 욕을 해!"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당황한 사회자가 뜯어말리고, 이 사태를 자초한 신부는 발만 동동 구르는데, 객석에서는 덤으로 얻은 구경거리에 환호성이 폭죽처럼 터졌단다."그만하세요! 김강수씨! 암만 순진한 총각이지만 이건 욕이 아닙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맹서할 테니 자, 진정하세요." 신랑은 그제야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고는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고 한다."강수씨 자식이 열 명이라는 뜻을 오해한 순진한 새신랑에게 박수를!" 객석에서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요란했지만, 그날 신랑신부는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서 숨고 싶었단다. 덕분에 이경진씨 부부와 시동생 부부는 지금까지 친한 친구로 지낸다. 그런 추억을 잊지 못하고 있는 시동생 부부는 올가을에는 '강수새끼 십(열)새끼' 를 외쳤던이경진씨를 만나러 광천에 갈 거라며 자랑이 대단하다.

시동생 부부는 지금도 여전히 순수하고 성실하다. 무엇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도 가볍게 넘길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을 살고 있다.

나도 올가을에는 세상근심 다 짊어진 듯, 그늘진 얼굴과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가볍게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




/권영이 증평군청 기획감사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