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들어온 지 15년 쯤 된다. 1997년 변호사업무를 시작하면서 부터다. 그해 가을 한수산 선생의 에세이 「세상의 모든 음악」중 자클린 뒤프레의 엘가 첼로협주곡에 관한 글을 읽다가, 당시 성안길 중앙공원 옆에 있던「소리모으기」라는 음반가게를 찾은 것이 시초다. 물론 그 전에도 음악에 관심은 있었지만, 대중음악이나 재즈, 뉴에이지, 클래식 등을 산만하게 들었었고, 학생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것 이상의 지식도 없었다. 그날 구입한 뒤프레의 엘가 첼로협주곡에 매료된 이후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지금은 없어진 위 음반가게를 찾아, 유명하다는 첼로 곡은 닥치는 대로 듣는 첼로 마니아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직접 연주하는 것을 듣고 싶은 마음에 첼로연주회장도 자주 찾게 되었다. 기억하기로는 양성원의 청주공연, 마이스키 청주공연, 빌스마 대전공연, 장한나 서울공연, 오프라 하노이 서울공연 등이 그 무렵 내가 찾았던 연주회장이다.

첼로에서 시작한 나의 음악여행은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플룻, 클라리넷, 오보에, 호른 등 다른 악기와 성악으로 옮겨져 유명곡을 하나씩 섭렵해 나갔다. 더불어 입문서인 신동헌 「클래식길라잡이」,「음악사이야기」등 안내서에서 시작하여 유명한 그라우트의 「음악사」,「두길서양음악사」, 심설당「들으며 배우는 서양음악사」등 대학교재와, 음악사전, 명곡대사전, 클래식대사전 등을 통해 전반적인 공부를 하게 됨은 물론, 음악감상에 관한 전문가의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지식도 늘려 나갔다. 근래 들어 베를린 필하모닉, 뉴욕 필하모닉, 런던심포니, 부다페스트 페스티발 등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 시에는 연주회장의 한 구석을 차지하곤 한다. 재작년에는 보스턴 방문시에는 보스턴심포니의 연주회장에서 플롯으로 유명한 제임스 골웨이를 만나 시디에 사인을 받고, 유명한 지휘자 하이팅크의 연주를 보기도 했다.

시간이 가면서 자연스레 1,000여장의 시디를 갖게 되었다. 최소한 열 번에서 수십 번씩 들어본 것들이다. 뒤프레의 첼로소품집은 하도 많이 가지고 다녀서 자켓이 너덜너널 하다. 좋은 오디오에 대한 관심도 생겨 6-7년 전부터는 정식으로 오디오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재작년 새 집을 지으면서는 사무실보다 좀 더 높은 급의 오디오를 설치했다. 작년부터는 음악사를 정리해 볼 겸 바흐부터 바르톡에 이르기까지 교향곡을 주로 들으며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의 삶을 되새겨 오다가, 교향곡의 완성자 말러와 그 스승 브루크너에 멈춰 있다. 아니, 멈춰있는 것이 아니고, 둘의 교향곡을 여러 지휘자들의 다른 음반으로 반복해서 듣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악보까지 달린 전문서적을 구해서 가끔 멜로디와 악보를 같이 견주어 보기도 한다.

법률가로 분주하고 팍팍해지기 쉬운 삶을 사는 내게, 음악은 무한의 위로자다.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거실의 오디오를 켜서 주로 레퀴엠 등 차분한 음악을 듣고, 출근 때는 차에서 행진곡이나 서곡 등 밝고 힘찬 음악을 주로 듣는다. 사무실에서는 전날 퇴근하기 전에 꽂아놓은 교향곡이나 악기별 협주곡이나 소나타를 듣는다. 이렇게 집, 차, 사무실 할 것 없이 모든 생활공간에서 음악과 함께 산다. 물론 클래식만 듣는 것은 아니다. 퇴근 후에는 재즈도 듣고 뉴에이지 음악, 월드뮤직도 듣는다. 법률강연 시작할 때마다 인생은 법과 더불어 시작되어 법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나의 삶은 음악과 함께 살려지고 있다.

아침에 눈뜨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눈부신 가을. 하늘은 푸르고, 들판에는 알곡들이 꽉꽉 들어차 익어가는 이 아름다운 계절은 무엇을 해도 잘 어울리는 때다. 운동도, 등산도, 여행도, 독서도, 그림구경도... 그렇다면, 저녁마다 귓전을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클래식음악의 향연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지. 시디, 디브이디, 케이블TV는 물론 MP3, 아이팟, 하다못해 KBS FM의 음악방송 등 다양한 매체가 주변에 널려 있다. 여기저기서 열리는 음악회도 많다. 나는 다음 주 대전의 베를린방송교향악단 연주회장에 간다, 그들이 연주하는 베토벤 3번 교향곡「영웅」을 들으러.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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