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복 충청북도 여성발전센터 소장

[충청일보] 지방자치단체 사업소를 일하는 역동적인 곳으로 만들며 당당한 충북여성의 길잡이에 나선 이가 있다. 충청북도여성발전센터 9대 소장으로 지난 1년 6개월여의 시간을 보낸 박종복 소장(58·사진)은 전국 최초로 3개국어로 번역한 다문화상담메뉴얼 발간을 비롯해 충북 성인지통계 발간, 연구·문화중심의 청사 기능 재배치 등을 뜨거운 열정과 실천력으로 '여장부'로 통하는 박 소장을 만나 충북여성의 미래를 그려본다.

―충북여성발전센터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센터는 도민양성평등정책연구 및 여성인적자원개발을 위해 설립된 충북도 산하 여성정책 수행의 싱크탱크다. 지역 내 유일한 여성교육 및 연구전문기관으로 충북지역 특수성을 고려한 시의성 있는 여성정책관련 조사·연구를 비롯 여성인적자원 개발 및 전문역량강화를 위한 교육, 양성평등을 위한 성인지교육, 다문화교육 및 여성역량강화·의식향상 교육, 여성긴급전화 1366충북센터 운영 등 여성전문기관으로서 지역거점적 역활을 강화하는 일을 한다.

―취임 1년6개월째, 사회복지직 첫 기관장으로 어떻게 지내왔나.
지난해 3월19일자로 발령받아 센터에 온 지 1년 6개월째다. 그동안 센터는 일반 행정직이 순환보직으로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남짓 다녀가는 곳으로 인식돼 오다 지난 2007년 개방형 직위로 바뀌었다. 정년을 4년 앞두고 3년짜리 개방형 직제에 지원하는 것부터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승진기회가 많지 않은 복지직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고 생각하니 판단이 섰다. 사회복지직 첫 사무관에 이어 사회복지직 첫 기관장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웠지만아동·보육·여성·노인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했기에 경험을 살린다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사회복지직에 있었기에 폭넓게 인지할 수 있었고 자기계발 측면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센터 내·외부 환경이 크게 변했다. 복지시설 확충 등 센터 환경개선에 적극적이었던 이유는?
센터는 여성 뿐아니라 도민이 찾는 곳으로 직원들에게'민 같은 관, 관 같은 민'이 돼야한다고 말한다. 노약자와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를 비롯해 평소 여성과 교육생들을 위한 소모임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없다는 것에 착안, 삼삼오오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그룹토의를 할 수 있는 열린방을 만들었다.여성과 관련 각종 연구자료, 기록물 등을 구입 비치해여성정책에 대한 지적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도록 아름방도 만들었다. 또 기존 비활용공간을 모유수유실로 바꾸고 여기에 유축기와 소독기 등을 비치, 운영중이다. 1366센터 내 피해자들이 임시로 머무는 공간을 쾌적한 환경으로 조성했다. 현재 청사 외부벽면 공사가 진행 중이다.10월말 공사가 완료되면 센터는 연구·문화중심 기능을 수행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충북성인지통계와 전국 최초 다문화가족 상담 메뉴얼 발간이 갖는 의미는?.
최근 발간한 '2011충북성인지통계'는 충북여성의 지위와 여성정책의 수요를 한눈에 조망하는 자료다. 지난 1999년, 2005년, 2007년에 발표한 '여성통계'를 '성인지통계'로 바꾸고 10개 영역의 최근 자료를 모았다. 일회성에 그치는 연구를 보완하기 위해'성인지정책발전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도 마련했다. 29일 센터 소통방에서 열린 토론회는 여성과 관련된 주요 현안을 민관이 함께 고민하고 성인지 정책의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충북이 '다문화 가족 상담매뉴얼'을 전국 최초로 베트남·중국·몽골 등 3개 국어로 번역, 발간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충북은 국제결혼율이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하면서 현재 6428가구의 다문화 가족이 정착하고 있지만, 의사소통의 어려움과 문화적 차이로 인한 가족 내 갈등이 심화돼 이들을 위한 상담지원 체계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지난해 '이주여성 상담원 양성 프로그램' 개발에 이어 '다문화 가족 상담매뉴얼'은오는 10월 시범 실시되는 '이주여성 상담원 양성 교육'과 함께 단계적 사업의 완결판이다. 이로써 이주여성이 이주여성을 상담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면 피부에 와 닿는 상담지원이 실현될 수 있다.

―월례기자브리핑, 찾아가는 교육 과정 개설 등 발상의 전환이 눈에 띈다.
센터 소장 취임 소식을 듣고지인들이 축하해주는데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신인 충북여성회관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꽤 있었는데도 사업소로연구·교육 기관인데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들은 시각이 예민하고 예리해 월례기자브리핑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도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브리핑을 하고서도 과연 보도가 될까 했는데 '진실', '성실' 이 두가지면모든 것은 통한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충북'이라는 타이들이 있는데 센터에서만 교육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여겼다. 도청도 북부출장소에 이어 남부 출장소를 개청하는 것처럼 센터도 찾아가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민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기위해 남부권은 다문화 가족 상담원 과정을 3월에 진행했으며 지난 21일에는 제천 명락노인복지관에서 성폭력상담원 과정(북부권)을 개강했다. 교육생들이 센터는 살아있는 기관이라고 말해줘 보람있었다.

―사회복지분야에서 꽤 알려진 집안출신…감쪽 같이 속여온 공직인생은 어땠나.
공직에 있던 지난 33년, 그리고 현재까지도 공과 사는 분명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사회복지업무가 어쩌면 숙명이었나보다. 어릴적 경상도에서 청주로 이사를 왔는데 그때부터 부랑자들과 함께 지냈다.둘째오빠는 현양복지재단 박성택 이사장으로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그간 사회복지직에 있으면서 집안과 내 배경이 오히려 오해를 살까 철통보완을 유지했다.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시절 오빠를 위해 나설 일이 왜 없었었는가. 가슴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도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센터로 오면서 우연하게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선후배들이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가 있느냐며 서운함을 표시하기도 했지만 지금도 그 일에 대해서는 옳았다고 생각한다.

―40세에 이룬 대학진학, 남 몰래한 선행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가정형편상 벌어서 학교에 다녀야 했는데 공무원이 되고서 늘 학업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98년 40세에 대학을 진학했고 이어 대학원 과정까지 마쳤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배움의 갈증을 해소했다.사회복지직으로 일하면서 후원자와 수혜자를 연결해주는 결연사업을 많이 했다. 매일 마주하는 일이지만 현장을 가면 모두 안타까웠다. 지난 1993년 숭덕재활원에서 만난 한 아동과 인연이 돼 16년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후원했다. 2009년 문경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어엿한 여대생이 됐다는 소식을 들으니 대견했다. 장애인 야학학교를 비롯해 시민단체, 여성단체 등에 후원도 하고 있고 모교인 청주 대성여상에 장학금도 지원했었다.

―충북도에서 여성국 신설 및 여성정책관 영입을 검토 중인데 이에 대한 의견과 앞으로 방향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나 여성정책 전담기구를 만든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도에서 정책을 입안하면 센터는 시행하는 기관이니 여성정책전담기구가 생긴다면 센터의 역할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센터가 역동적으로 지내온 것은 모두 센터 직원들 덕이다.추석을 앞두고 여성장애인 성폭력보호시설인 모퉁잇돌에 위문품을 전달했는데 이 역시 센터와 1366 직원들이직무연찬 때 아이디어를 내고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진행됐다. 늘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직원들이 나에게는 천군만마다. 앞으로는 주말이용도를 높이고 도민의 요구에 맞는 연구와 교육과정을 운영해 '당당한 충북여성'을 실현시키는데 주력해 나가겠다.

/안순자기자·사진=권보람기자


▲ 박종복 충청북도 여성발전센터 소장. © 편집부

<프로필>
△학력
청주대학교 행정대학원 졸업
△경력
-보은군청 내무과, 단양군청 내무과, 충주시청 가정복지과, 충북도청 가정복지과·노인장애인복지과 등.
-현 한국방송통신대 충북동문회 부회장, 현 운전면허행정처분심의위원회 위원, 현 범죄피해자지원협의회 위원, 현 충북아동·여성성폭력방지지역연대협의회 위원, 청주대학교 행정대학원 원우회장 역, 보건복지부 보육정책자문위원 역 등.
△수상
국무총리 표창장, 행정자치부 표창장,충북도지사 모범공무원상,충주시장 자랑스런 공무원상, 한국노인보호전문기관협회장 감사패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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