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한글창제 훈민정음발표 565년을 맞으며, 유쾌한 소식이 들린다.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도입해 성공적으로 그들의 말을 문자로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또 일본, 중국, 동남아로 불던 한류가 이제는 유럽을 넘어 미국까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열풍을 일으킨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거센 바람이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고, 미흡하고 어리다고 대수롭지 않게 봤던 후배들이 대견스럽다.

그런데 과연 이 한류가 일시적 반짝임일지, 아니면 그 이상으로 세계문화의 한 조류이고, 대세를 이루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일시적 붐이 아니라 문화의 조류를 이루려면 근본적인 문화의 힘으로 자리 잡아야만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런 문화를 기획하고, 앞장서 나가는 이들은 학교에서 결코 우등생이 아니라 톡톡 튀고, 엉뚱하고, 걷잡을 수 없는 애들이었고, 문화게릴라들이었기에 역동성과 창의성에서 일말의 희망을 걸 수 있다. 그동안 우리의 입시위주의 획일적인 교육으로는 이를 뛰어넘을 수 없다. 세상은 우등생으로만 아름답게 만들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민중들의 뭉친 힘들이 분출되어 나올 때 대단한 힘을 가진다.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5.18항쟁. 6.10항쟁, 2002붉은 악마, 촛불 등을 보면 그 역동성과 자존감이 넘쳐난다. 과연 우리 문화에서 이런 힘들은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누구는 사회심리적으로 말해 '평등주의'라 했고, 또 다른 이는 만주벌판을 달리던 민족의 '유목성'이라고도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문자해득·소통력을 빠트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글 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디지털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라는 점이다. 정말 컴퓨터 시대, 첨단 IT시대에 한글만한 문자가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정말 든든하다. 다시 한 번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께 감사해야 한다.

세종대왕과 한글은 우리 지역과도 밀접하다. 바로 눈병이 나셨다는 세종대왕께서 세종26년(1444) 춘삼월 한글창제의 마무리 작업을 위해 초정리에 머물렀다 가신 곳이다. 그리고 세종28년(1446) 10월 한글을 반포하였다. 말하자면 초정리 행궁은 한글창제의 산실이다.

그동안 초정리와 세종대왕을 주제로 초정약수축제도 이루어 졌다. 그리고 초정약수공원도 준공을 앞두고 있다. 그런데 그 곳을 가보면 수십억의 돈으로는 공을 들였고, 들어가는 길이 4차선 대로로 곧게 뚫렸다. 하지만, 역사적 정취도 없고, 정겨움도 느낄 수 없다. 안타깝고 아쉽다. 그렇게만 해야 했을까. 문화는 콘텐츠라고 입발림을 하면서, 무슨 얘깃거리를 찾아 새로운 매혹을 주려고 했을까. 요즈음 열풍인 올레길도 없고, 다 아는 이야기, 그렇고 그런 공원으로 초정리를 단장해 성공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깊이 숨겨져 있을 것' 같고, '끊없이 솟아나올 이야기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매력'이 없이 어찌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2006년 나온 책 중에 배유안 작가의 독특하고 흥미로운 동화 『초정리편지』가 있다. 문학비도 좋고, 훈민졍음 쓰고 읽기 대회도 좋고, 아무튼 좋은 꺼리라는 생각이 든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발 더나가 세종문화관, 한글교육문화관(센터)을 만들어, 세계적인 한글과 한류열풍을 담아 모으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여, 약수물로 눈씻으러 오는 사람도 있고, 목욕하러 오는 사람도 있고, 문학비를 보러 오는 사람, 훈민졍음 쓰고 읽기 대회에 오는 사람, 한글을 배우러 오는 사람, 가르치러 오는 사람, 모두 모두 모여드는 문화마을로 바꿔 놓는 것이 어떨까. 아울러 어느 한 곳에는 민속촌 같은 한옥민속마을, 마음과 몸도 쉴 수 있는 휴양 숲도 만들어 놓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큰 도로, 단장한 공원만으로는 대안이 아니다.




/정지성문화사랑모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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