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양역학의 근본 이론체계인 오행설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요소가 서로 생(生)하고 극(剋)한다하여 상생상극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이라는 용어를 통상 '서로 생(生)'하고 '서로 극(剋)'하는 개념으로 활용하여 목과 화는 서로 상생하는 관계이고 목과 금은 서로 상극하는 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오행 목과 화의 관계를 정확히 분석해 보면 목은 화를 생하지만 화는 목을 같이 마주생하지 않는다. 즉 목만이 일방적으로 화를 생하고 화는 목의 생을 받기만 하는 '상생(相生)'이 아닌 '편생(偏生)'의 관계가 된다.

이것은 다른 오행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화는 목의 일방적 생을 받기만 하고 토는 화의 생을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여 오행 모두는 각각 일방적 '편생'의 관계에 있다.

극의 관계 역시 목은 토를 극하지만 토는 목을 같이 극하지 않는 일방적 '편극(偏剋)'의 형태이다. 다른 오행 역시 마찬가지로 오행 간에는 각각 일방적인 '편극'만이 성립된다. 그렇다면 '상극'이 아니라 '편극'이라 해야 옳은 표현이다.

이것을 호랑이와 토끼, 토끼와 풀의 관계에 비유한다면, 언제나 일방적으로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지 토끼가 호랑이를 잡아먹는 경우는 없으며, 또한 언제나 토끼가 풀을 뜯어먹지 풀이 토끼를 뜯어 먹지는 않는 일방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정확히 표현 한다면 상생상극이 아니라 편생편극이라고 해야 한다.그렇다면 오행의 생극관계를 '상생상극'이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는 오행 전체를 한 단위로 표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행 각각의 개별 관계를 표현한 것으로, 같은 하나를 바라보는 '전체'와 '부분'이라는 기준의 차이에 의한 다른 표현인 것이다. '부분' 기준으로 보면 앞에서 분석해 보았듯이 상생상극이 아닌 편생편극이고, '전체' 기준으로 보면 상생상극인 것이다.

오행상생에서 목은 화만을 생해 주고, 화는 토만을 생해 주고, 토는 금만을 생해 주고, 금은 수만을 생해 주고, 수는 목만을 생해 준다. 이때 오행 각각의 개별적 관계를 보면 목은 오로지 화만을 생 해 주고 화는 오로지 목으로부터 생을 받기만 하는 일방적인 편생이지만, 전체를 보면 목은 오로지 화만을 생해 주었는데 자신은 수로부터 생을 받게 된다. 즉 수를 직접 생해 주지는 않았지만 목 자신이 화를 생함으로 인해서, 화는 토를, 토는 금을, 금은 수를 생하고 결국 수로부터 자신 역시 생을 받게 된다.

이것은 극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목은 토를 극하고, 토는 수를, 수는 화를, 화는 금을, 금은 목을 극하게 되어 목은 오로지 토만을 극하였지만 그 토를 극한 것으로 인해 결국 금으로부터 극을 받게 된다. 이 상극 고리의 한 부분들을 보면 일방적인 편극이지만 그 부분의 편극들이 모여 결국 상극의 고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오행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인 상생상극을 동양의 통합적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고, 오행 개체별 시각인 편생과 편극은 서양의 분석적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동양의 사상은 오행의 상생상극이라는 개념에서 알 수 있듯 사물전체를 바라보는 통합적 시각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오행설이 이렇게 오행 전체 차원이라는 것은 하나의 완성을 이루는 상생고리의 내면은 편생이라는 일방적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의미하며, 상극의 경우 역시 내면의 과정은 일방적인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게 됨을 의미한다.

과정을 보면 편생과 편극의 모순이지만 결국 그 모순들은 완성을 이루기 위한 과정의 모순이 되는 것으로, 이것을 우리의 인생에 비유한다면 인생이라는 여정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부분들을 거치며 많은 모순 속에 있게 되지만, 그 모순들이 전체 차원으로 보면 완성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해당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목이 화를 생해도 화로부터 즉시 생을 받지 않는 것처럼 현실에서 선(善)을 베풀었어도 즉시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목은 화를 생한 것으로 인해 수로부터 생을 받듯이, 우리가 베푼 선에 대하여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엉뚱한 곳에서 혜택을 받게 된다는 순환의 논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극 관계 역시 목이 토를 극해도 토로부터 즉시 극을 받지 않듯이, 현실에서 악을 행하고도 즉시 그 대가를 치르지 않게 되다보니 어리석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악을 범하다가 결국 목이 금으로부터 극을 당하듯이 언젠가는 자신이 이전에 행한 악의 결과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게 되는 인과응보의 순환논리라고 할 수 있다.




/소재학 미래예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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