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라는 말은 우연을 잘 표현 하는 우리네 속담으로써 누군가의 말을 할 때 그 시간에 당사자가 갑자기 장소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 우연은 존재할까? 삶을 살며 경험해본즉 분명 우연은 존재하긴 한다.

"백화점에 쇼핑하러 갔다가 우연히 여고 동창생을 만났다.","미술관에서 미술을 관람하다가 우연히 첫사랑 남자를 만났다." 라는 말을 주위에서 종종 듣는 것으로 보아 삶 속에서 우연을 배제할 순 없는 노릇인 듯하다. 나또한우연히 어느 블로그에 방문하여 셀리의 (Shally's Law)법칙에 대해 쓴 글을 본 적 있다. 그것엔 우연을 가장한 좋은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 중에 가장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뜬금없이 남편이 "사랑해." 하고 말하길래 "이 양반이 실성 했나?" 하고 쏘아붙였더니 금일봉을 내놓더라'와 '얼굴보기 힘든 아들 딸 일찍 와서 아양 떨더니 용돈을 두둑히 주더라', '뜻밖의 수입이 생겼는데 그 사실을 아내가 전혀 모르더라' 등 이런 우스갯소리가 쓰여 있었다. 이 내용들 이면엔 우연히 모든 일들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잘 진행되기를 바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짙게 깔려 있음을 난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삶을 살며 예기치 않은 우연과 맞닥뜨리는 일들이 간간히 일어나긴 한다. 정치 쪽만 해도 그렇다. 지난 2004년 총선에서는 유난히 초선 의원이 많이 당선 되었었다. 그 수는 전체 국회의원 3분의 2를 웃돌 정도였다. 그 중 모 정당의 의원이 108명이었는데 그 별명이 '108 번뇌'이다. 이들이 누구인가.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을 지닌 초선 의원들 아닌가. 정치판은 늘 피할 수 없는 소용돌이가 일기 마련이다. 그 핵에 놓였으니 백팔 번뇌라는 별칭이 어울릴 법도 하다. 그러고 보니 스포츠 경기에도 숫자 '108' 과 일치하는 우연이 존재하고 있어 이점 매우 흥미롭다. 골프 홀 컵의 지름은 4와 4분의 2인치( 1인치는 2.5399cm)로 약 11cm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108mm 이다. 초기에 수도 파이프를 골프의 홀 컵으로 쓰기도 했는데 이는 그 지름이 108mm였기 때문이다. 무슨 경기든 행하기에 앞서 생각이 따라야 하고 올바른 판단력이 요구 된다. 골프 또한 잘은 모르지만 골퍼들이 공을 칠 때 나름대로 번뇌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108번뇌와 골프 홀 컵의 지름 108mm의 사실은 그런 대로 썩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요즘 나는 어떤 우연을 기대할까? 며칠 전 아파트 쓰레기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 내다버린 멀쩡한 장롱을 빗자루로 먼지를 털고 깨끗이 걸레질을 했다. 그리곤 친정어머니의 소개로 어느 독거 할머니께 이삿짐센터에 부탁해 장롱을 배달해 드렸더니 마치 새것을 받은 것처럼 좋아라 했었다. 그날 할머니 댁에서 발길을 돌리려 하자 할머니는 치아가 안 좋아 죽을 끓일 때 분쇄기가 필요한데 혹시 우리 아파트 쓰레기장에 누군가 버리는 게 있으면 그것도 주워서 당신한테 갖다 달라고 부탁을 해 오신다.

할머니의 부탁이 너무도 간절하여 요즘 아파트 쓰레기장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눈여겨 살펴본다. 하나 주부들이 얼마나 알뜰한가. 쓸 만한 가전제품을 쓰레기장에 버릴 만큼 정신 나간 주부들은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았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버려진 분쇄기는 없으니 이제 우연에 기댈 수밖에.

우연히 중앙 문예지에서 내게 원고 청탁이 온다면 글 한편 치열하게 써 보내 그 원고료로 할머니께 새 분쇄기를 사드려야 할까 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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