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하늘이 파랗고 서늘한 바람마저 불어오는 며칠 전 오후였다. 경주를 찾은 나는 경주의 2대 비색 중 하나인 불국사 석굴암 부처님의 붉은 입술 색에 매료 돼 석굴암 안의 부처님을 바라보며 감흥에 젖을 때이다. 석굴암 밖 처마 밑에서 스님 두 분이 어느 말쑥한 외양의 신사 분을 상대로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가 싶어 귀 기울이니 스님 한 분이 곁의 스님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 저 스님이 큰 수술을 받아 몸이 성치 않습니다. 불자님 자비를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며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그러자 그 신사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지갑에서 만 원 짜리 지폐 두 장을 꺼내 그 스님에게 선뜻 건네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 당시 그때 상황을별 의심 없이 지나쳤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스님들은 모르긴 몰라도 전국 유명 사찰을 돌며 관광객들이나 아님 불자들을 상대로 돈을 갈취하는 사기꾼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을 지울 길 없었다. 스님이 누구인가. 부처님의 설법을 중생들에게 전파하고 백팔번뇌에 빠진 중생들을 자신들의 구도로 구하는 분 아닌가.

아무리 세상이 물신주의에 젖었다고 하지만 스님들의 사소한 개인사를 빌미로 사찰을 찾은 관광객들이나 불자들에게 돈을 요구할 만큼 불교가 타락하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분명 그들은 스님들이 아니었으리라.

설령 사기꾼이었다고 치자. 아무리 방법이 궁하기로서니 신성한 불전 앞에서 인간으로서 파렴치한 방법으로 남의 호주머니를 노리는가. 그들이 내가 추리한 그대로 사기꾼들이라면 이는 분명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도 없는 행위를 저지르는 게 분명 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친한 친구가 어느 친척을 찾아 먼 길을 떠났었단다. 하룻밤 친척 집에 머물다가 집으로 돌아오려고 지갑을 열어보니 현금처럼 갖고 다니던 은행 카드가 지갑 속에 없더란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집으로 돌아오기 위하여 고속 전철을 타야 하는데 지갑 속에 현금은 불과 만 여 원 밖에 들어있지 않아 매우 난감하더란다. 한데 친구의 친척은 어인일인지 예의상으로라도 여비를 줄 기미를 보이지 않더란다. 하여 차마 말을 꺼내기가 거북해 망설이다 하는 수없이 가까스로 입을 열어 자신의 처지를 말했다고 한다.

그제야 그녀는 친척의 도움으로 간신히 고속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했다. 집으로 오면서 친척에게 차비를 구한 자신이 왠지 구차한 생각이 들어 무척 자존심이 상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 친구의 심정을 적으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남에게 물질을 구걸하는 것만큼 인간으로서 자존심 상하는 게 없는 일이다. 하여 우리 조상들은 살림이 빈한하여 끼니를 못이어도 결단코 남에게 쌀이나 돈을 꾸러 가는 행위를 삼갔었다.

그날 스님을 가장하여 관광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사기꾼들의 행위는 남을 속이기 앞서 사기꾼들 자신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기도 하였다. 어떤 경우라도인간으로서 자존심이자 양심이기도 한 진실은 목숨처럼 지켜야 하리라. 가난하여 물질이 풍부하지 못한 것은 수치가 아니다. 진실을 속여 자신한테까지 거짓을 행할 때 인간으로서 가장 부끄러울 때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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