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에 가까운 진한 화장, 손가락마다 번쩍이는 보석 반지, 손목에 찬 명품 시계, 손에 들린 수천 만 원을 호가 한다는 악어가죽 핸드백이며 얼핏 봐도 꽤 값 나갈듯한 화려한 옷차림으로 미뤄봐선 귀부인들이 틀림없다. 하지만 언행은 교양, 지성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그야말로 거죽만 번드르르한 빛 좋은 개살구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요란한 그녀들의 외양이 갑자기 참으로 천박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선(善)이 곧 행복이라고 하였다. 또한 덕(德)을 행하는 것도 행복의 한 방법이라고 일렀었다. '나'를 버리고 '타인'을 내 마음에 들여놓을 때 덕은 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날 지하철 안의 그녀들의 태도는 타인에 대한 배려, 덕을 베푸는 일하고는 담을 쌓는 언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며칠 전 서울 근교에서 일하는 둘째 딸에게 가기 위해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었다. 마침 지하철 안은 몹시 붐비고 있었다. 이 때 양 손에 짐을 잔뜩 든 70대 후반 쯤 돼 보이는 어느 할머니가 지하철 문이 닫히려는 순간 지하철 안으로 황급히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양 손에 짐을 든 할머니는 사람들 틈에서 이리저리 쏠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는 듯 자신의 앞좌석에 앉은 아이들의 양해를 구한 후불안한 자세로 좌석에 앉았다. 그러자 아이들 옆에서 수다를 떨던 여인 한명이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할머니께 다가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할머니가 좌석에서 일어나기를 종용하였다. 이에 할머니는 얼굴이 벌개지며 엉거주춤 좌석에서 일어서는 게 아닌가. 이를 보다못한 건너편에 앉아 있던 어느 초로의 아주머니가 할머니께 자신의 자리를 양보 하며" 어찌 그리 인정이 없오? 노인분이 계시면 아이들을 일으켜 세워서라도 좌석을 양보해 드려야지 좌석에 앉은 노인분을 아이들 불편해 한다고 일으켜 세우다니 당신은 부모도 없오?" 라고 하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 여인은 " 아이들이 불편해 하는데 다른 자리에 앉으면 되잖아요?" 라고 하며 톡 쏘아붙이는 게 아닌가.

이 광경을 목격하자 나또한 심기가 몹시 불편했다. 한편 저런 어머니에게서 아이들은 그 무엇을 보고 자랄까 싶은 기우가 일었다.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이나 진배 없다. 아이들을 아무리 해외 유학을 보내고 유명 학원 순례를 시킨들 가정에서 부모들이 평소 삶의 태도를 본보기를 보이지 않는다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좋은 지식이 무슨 소용 있을까? 그 날 지하철 안의 어린이들은 좌석에 앉은 노인을 일으켜 내쫓은 자신들의 어머니를 보면서 무엇을 배웠을까? 늙으면 누구나 젊은이들한테 홀대를 받는 게 당연한 것으로 혹시 받아들인 것은 아닐는지. 이점을 아이들이 본받았을 것을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할 정도이다.

나의 친정어머닌 젊은 날 내게 결혼하면 시어른 공경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늘 누누이 타일렀었다. 효가 최고의 삶의 덕목이며 부모에게 효를 실천하는 자는 하늘도 돌본다고 하였었다.

그래 시어머니 생전엔 일주 일이 멀다않고 전화를 드렸었다. 포항이 시댁이라 거리가 멀어도 한 달에 한번은 꼭 찾아뵙곤 했었다. 요즘도 노인 공경이 몸에 배서인지 노인들이 유모차에 고물을 주워 힘겹게 밀고 가시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목적지까지 끌어다 드리곤 한다. 이는 남의 부모도 마치 내 부모 같은 생각이 들어서이다.

노인들이 누구인가. 오늘날 이렇듯 눈부신 경제 성장을 한 것도 그분들 덕택 아닌가. 가난했던 지난날 시골에선 자식 공부 위해 논밭 팔고 소까지 팔아 일명 우골탑이라고까지 불리던 대학 공부를 우리들에게 가르치셨잖은가. 그 덕분에 이렇듯 능력을 갖춰 오늘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사는 게 아닌가.

언젠가 머잖아 지하철 안의 그녀들도 곧 노인의 처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 때 자식들이 자신들을 사람취급 안하고 짐짝 취급 할 때를 눈을 감고 상상해보라. 노인도 사람임을 비로소 절감할 것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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