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익칼럼>전태익 • 본지 객원논설위원 시인 주성대 강사

척척한 가을비가 중얼거리듯 내린다. 언젠가 어느 대기업 입사시험에 최치원의 '가을밤 빗소리를 들으며(秋夜雨中)'라는 한시가 출제된 적이 있었다. 괄호 안에 '소리음(音)'자와 '마음심(心)'자의 압운(押韻)을 집어넣어야 맞추는 그런 문제였다. 당시 이 문제의 해답을 적은 지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한다. 이 시의 내용은 이렇다.

&amp;amp;amp;amp;quot; 가을바람도 쓸쓸히 읊조리나니/ 세상길에 참 벗 없음이여!/ 창밖엔 삼경의 비/ 등잔 앞엔 만리의 마음(秋風唯苦吟 世路少知音 窓外三更雨 燈前萬里心).&amp;amp;amp;amp;quot;

이런 밤 한시 한 수를 읊조려 봄도 생활의 운치를 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시풍의 오언절구(五言絶句)를 음미하는 것보다 국화와 관련한 고시조 세 편을 암송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시조에는 민족의 역사와 삶과 사상과 운율이 자연스레 녹아 있기 때문이다.

&amp;amp;amp;amp;quot;돌 비탈 백 천 구비 기를 쓰며 오른 절지(絶地) 뉘 맡으라 향기 놓아 벼랑을 수놓으며 산국화, 찬 하늘을 향해 정성스레 펴 있구나&amp;amp;amp;amp;quot;

누가 봐 주고 알아 주고가 무슨 대수인가. 어느 외진 곳에 홀로 있어도 제 목숨 제 가치는 언제나 선을 다하고 미를 다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것, 누가 보라해서가 아니며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절인처(絶人處), 위태로운 벼랑 끝에 아름다운 미소 머금고, 그윽한 향기 풍기며, 서리 하늘 뜻 품어 더욱 외로워 보이나 정성스럽게 피어 있는 산국화! 거기는 이미 '보아줄 이 없음의 외로움'도 '남이 알아주지 않음의 서운함'도 없다. 싸늘히 깨어 있는 고결한 영혼! 산국화에 투영되어 있는 고고한 자신의 영혼, 나아가 한국인의 품성을 만나게 된다.

&amp;amp;amp;amp;quot;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네 홀로 피었는다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amp;amp;amp;amp;quot;

고독한 자신의 높은 절개를 노정시켜 준 시조이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함은 서리를 이겨내는 높은 절개라는 뜻으로 자신의 생활 철학과 품격을 국화라는 매개물로써 내면화한 것이다. 나아가 한국사의 문맥에서 살펴보면 서리를 이겨내는 고독한 이미지로서의 국화는, 한국인의 생활에서 그 쓰라림을 견디어 온 참을성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국화는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를 표상하는 한국인의 영상이라 할만하다. 원형이론을 정립한 노드롭프라이는 한 작가의 개별적인 의미 속에서 집단무의식의 보편성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위 시조에서도 우리 민족의 심상과 리듬을 보고 들을 수 있다.

&amp;amp;amp;amp;quot; 창 밖에 국화를 심고 국화 밑에 술을 빚어 놓으니 술 익자 국화 피고 벗 님 오자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청 쳐라 밤새도록 놀아나 보리라&amp;amp;amp;amp;quot;

이 자족하는 여유와 멋스러운 풍류 앞에 조잡한 세사쯤이야 얘기한들 무엇 하리! 술이 익으니 국화도 피어나고, 때마침 절친하던 벗님도 방문하니 가을 달은 맑고 밝게 동산에서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문고의 괘상청과 괘하청을 쳐서 밤새도록 놀아보자고 하는 한국인의 낙천적인 생활상과 멋스러움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3장 6구 12음보 45자 안팎. 시조에 들어 있는 한과 멋과 사상과 정서를 본받아 이 시대에도 계승 발전시키자는 것이지 ~있구나, ~하노라, ~보리라 따위의 어투를 본받자는 것이 아니다.

/전태익 &amp;amp;amp;amp;bull; 본지 객원논설위원 시인 주성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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