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한민족의 특징이 단일민족이라고 여겼던 자부심이 무색한 시대가 되었다. 한국 거주 외국인의 수가 백만 명을 넘은지 이미 오래되었고, 농어촌에는 다문화 가정이 7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제는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서도 물밀듯이 밀려오는 외국인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 근래에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여러 가지 정책이 시행되고 있으며, 외국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이전보다 우호적으로 변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아직도 마음 한편에 다문화에 대해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고 있다. 인종차별에 관한 계속되는 기사는 다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는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메시지다.

한 인도인은 버스에서 한국인으로부터 "더럽다" "냄새난다"는 불쾌한 소리를 들었고, 한 나이지리나인은 "아프리카인은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음식점 출입을 금지 당했다. 지하철에서 한 외국인이 한국인을 폭행하는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 말한 "니가 앉아"라는 말을 피부색이 검은 그 외국인이 흑인을 지칭하는 '니그로(negro)'로 잘못 이해해 생긴 불상사였다. 한국국적까지 취득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30대 귀화 여성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목욕탕 출입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엄연히 한국명도 가진 그 여성은 업주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이주민인권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고,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법 제정 운동에 나서기로 했다. 인종차별을 당한 사람들은 그들 자신보다 2세들이 받을지도 모를 상처가 더 염려스럽다고도 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백색인종보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유독 심하다는 사실이다. 같은 외국인인데 백색인종에게는 비굴하리만큼 친절한 것은 무슨 아이러니인가.

지금 인종차별을 받고 있는 그들은 모두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이 땅을 밟은 사람들일 것이다. 잠깐 196,70년대의 우리의 처지도 그들과 다름없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당시 만해도 후진국이었던 한국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많은 사람들이 꿈을 찾아 미국으로 떠났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합중국은 당시 만해도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살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땅에서도 인종차별은 엄연히 존재했다. 당시 황색의 아시아 이민자들은 흑색의 미국인들보다 더 차별받았다. 이국땅에서의 설움을 딛고 그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국가와 의식 있는 국민들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미 미국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영어교육 등 이민자들을 위한 국가적인 차원의 정책들이 실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도 유학생 부인으로서 무료로 영어교육을 받았고 친절한 교사의 배려로 미국문화도 익히면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추억이 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내 기억 속의 미국은 적어도 민간적인 차원에서는 이민족을 배려하려고 애쓰는 사려 깊은 나라로 각인되고 있다.

이주민 130만 시대,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가 아니다. 아직도 뿌리 깊은 순혈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폐쇄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정부가 다문화사회를 표방한지 6년이나 지났지만 인종차별 금지법은 국회에서 잠만 자고 있다. 정부차원의 여러 가지 정책들이 신속하게 시행되어야함은 물론 이에 앞서 다문화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정현숙(이천시립월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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