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수능 시험을 치른 전국의 수많은 수험생들은 각기 남다른 마음과 각오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으리라. 수능이 실시되는 날이면 각 학교마다 건투를 기원하는 현수막이 춤을 추고, 합격을 상징하는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풍경이 정겹다. 또한 부모들은 교문에서 수험생 자녀들을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은 지극 정성이 묻어난다.

시험 시간에 늦어 경찰이나 소방관의 도움으로 사이렌을 울리며 시험장에 들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은 수능 때나볼 수 있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은 수능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에 이런 일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히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는 이 날의 중요성이 가장 크게 느껴질 것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어느 학교라고 할 것 없이 고교 앞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교문 주위로 줄지어선 차량들, 온갖 군상이 시야에 머문다. 일찌감치 교문 앞에 자리한 고급 승용차, 한참 뒤엔 같은 마을 학생들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카플 승용차, 멀찌감치 노동의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낡은 트럭까지 교문과 차의 거리는 부모의 경제력, 학생의 성적과 비례한다는 어느 교사의 넋두리가 예사롭지 않다.

수능시험은 객관식이다. 누구의 실력이 깊이가 있느냐를 따지는 주관식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은 문제와 내용들을 익혀 실수를 적게 하느냐를 비교하는 오지 선다형이다. 전문가들은 과외나 학원 수강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부유층에게 유리한 게임이라고들 하지만 시험위원들은 하나같이 전 교과를 아우르는 EBS강좌에서 70%를 출제했다고 한다.

여기에 맞춰 전국의 수험생들이 한 줄로 선다. 교문을 빠져나오는 수험생들은 일제히 줄에 오른다. 단판승부, 한 순간이 고교 3년 동안의 땀과 노력이 허사가 되기도 하고, 이에 자살하는 학생도 있다. 초등학교부터 12년 공부가 헛일이었다고 실망하는 학생도 있다.

패자부활전을 하려면 일 년 더 땀을 쏟아야 한다. 꽃 같은 10대의 마지막 순간을 되풀이 공부에 허비하는 재수생 숫자가 해마다 몇 만 명이라면 분명 잘못된 승부다. 재수의 성공 확률이 20%도 안 된다면 더욱 재고해 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서글프지만 패자부활전도 부모의 능력이 형태를 결정한다. 학원 수강도 천차만별이다. 수백만 원 들여 입학한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는 반수(半修)도 가정 형편이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다.

수능 무렵이 되면 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수험생이나 똑같다. 밤잠을 설치기 일쑤이고 숨죽이며 고통을 함께한다. 더욱이 전국의 교회와 사찰은 이 땅의 신심(信心) 깊은 어머니들의 기도 열기로 뜨겁다. 자녀의 수능 기원을 위해 3,000배, 100일 기도를 드리느라 행락 철 못지않은 문전성시를 이루기도 한다. 일본도 예외는 아닌 듯 신사에는 시험합격을 기원하는 글귀를 적어줄에 끼워 늘여놓은 모습은 이색적인 풍경이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집이 아니라 심야학원행 승합차나 미니버스에 오르는 수험생도 적잖다. 지금 넘어야 할 수
능이라는 장벽은 작은 장벽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학생들은 대학별로 치르는 논술과 적성검사가 남아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고장벽을 넘으면서 앞으로 그들 인생에 있어 결코 피할 수 없는 장벽들이 닥쳐 올 때도 무난히 헤쳐 나가는 수험생들이 되리라 믿는다.

수능을 준비했던 학창시절이 성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관계, 가족관계, 자기관리와의 싸움이었음을, 다른 학우들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음을 깨우쳐 성숙시키는 발판이 되길 바람 해 본다.

이들이 하얗게 새우는 밤은 누가, 어떻게 보상할까. 대학 입학이 골인지점이라면 숨이 턱턱 막히더라도 달려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지성을 쌓아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인생 마라톤은 대학에 입학하고 부터가 정식 레이스의 달리기가 아닌가.



/정관영 공학박사, 충청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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