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10개 항에 합의함에 따라 남북평화 이슈가 불과 76일 앞으로 다가온 17대 대선에 주요 변수로 떠오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비록 첫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2000년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됐지만 남북경협과 대화채널 다각화 등 남북정상간 합의내용에는 실질적이고 대담한 진전이라고 평가받을 만한 항목들이 다수 포함됐다.

이 때문에 대선을 목전에 둔 정치권은 그간 '2007년 남북정상 선언'을 계기로 경제 이슈에서 평화이슈로 이번 대선의 화두가 전환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유권자들에게 차기 정권의 성격과 남북평화 진전의 연관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로 작용하면서 결국 대선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한 반면 한나라당은 향후 대선정국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대조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신당 정동영(鄭東泳) 후보측 민병두 의원은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를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누가 집권하는 게 옳은가에 대한 이성적인 물음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고, 손학규(孫鶴圭) 후보측 송영길 의원은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후보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에 실패했는 데 남북합의에 이어 북미관계가국교정상화로 급진전된다면 한나라당 세력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해찬(李海瓚) 후보측 윤호중 의원은 "남북정상회담을 차기 대통령에게 넘기라고 했던 분들은 이번에 획기적 합의를 이룬 데 대해 당황스러워 할 것"이라면서도 "여야의 유불리를 따질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범여권내에서도 대선 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평가가없지 않고, 학계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신당 경선이 혼탁과 비방전으로 얼룩지면서남북정상 선언의 후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당 김태년 의원은 "정상회담이 민주개혁진영에 나쁘지는 않겠지만 판을 확 뒤집거나 바꿀 것이라고는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경희대 김민전 교수는 "남북간 합의가 몇차례 있었지만 합의와 실천은 다른 문제라는 점을 유권자가 잘 알고 있어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설사 이번 정상간 합의가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 해도 수혜자가 될만한 범여권 후보가 존재하지 않는 데다 경선도 못 치러 난리인 상황에서 덕 보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컨설팅사 폴컴 윤경주 대표도 "범여권에 유리한 환경이지만 경선과정의 파열음이 워낙 커서 특정후보가 혜택을 입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한나라당과 이 후보가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설치 등 민감한 합의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가평화이슈를 촉발하는 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나라당은 이번 남북정상간 합의가 북핵폐기 등 핵심현안을 비롯해 국군포로 송환 등 인도적 사안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데다 국민의식도 대선과 남북관계를 분리해서 바라볼 정도로 성숙한 상황이어서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만의 하나 범여권이 남북평화 이슈를 대선에 적극 활용할 경우 변수로 부상할 수 있다는 신중한 반응도 나왔다.

한나라당 김재원 당 정보위원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벤트성 합의사항 한두건 말고는 핵심 합의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없다"면서 "범여권은 이번 정상회담을 대선에 이용하려고 피나는 노력을 하겠지만 그러기엔 내용이 너무 부실해 영향을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러나 김정훈 공보부대표는 "종전 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과 관련,입영을 앞둔 당사자나 부모들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한 모병제 공약 등이 나온다면 대선판이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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