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딸에게 다니러 갔다가 며칠 만에 집에 왔다. 집안 살림이 엉망일 거라는 염려와 달리 빨래 건조대에 널려있던 빨래가 얌전히 개켜 서랍 안에 반듯하게 넣어져 있었다. 화분마다 물을 준 흔적으로 흙이 촉촉했다. 친정어머니가 우리 집에 다녀가신지 불과 얼마 안 된 듯 주전자 한가득 따끈한 보리차도 끓여져 있었다. 목이 말라 그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더니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온몸에 훈훈하게 퍼지는 듯하였다. 당신의 자식은 자신의 자식이 걱정돼 편찮으신 당신을 돌보지 않고 몇날 며칠을 딸에게 가 있었잖은가. 그럼에도 어머닌 그런 딸자식의 소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성치 않은 몸을 가까스로 가누어 딸이 사는 아파트를 찾아 집안을 깨끔히 청소까지 해놓고 가셨다.

당신 몸 돌보지 않고 오로지 자식 위하는 일이라면 이즈막도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는 나의 어머니이다.

어찌 이런 마음이 나의 친정어머니에게 만 국한 되랴.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자신의 몸을 도사리지 않잖은가. 때론 이런 자식 사랑이 그 도가 지나쳐 치맛바람이니 극성 교육이니 하는 말로 어머니의 자식 사랑을 폄하하기도 한다.

나의 어머닌 우리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한 번도 강요 한 적 없다. 다만 "배움이 적으면 그만큼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 라는 말로 공부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곤 하셨다. 한편 아무리 지식이 풍부해도 사람 됨됨이가 미숙하면 높은 학식도 부질없다며 인성 교육을 더 중시한 분이었다.

어렸을 때 동생이 남에게 맞고 온 게 분하여 찾아가 그 아이를 때린 적 있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어 내 종아리를 내리치시며,

"자랄 때는 맞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며 크는 것인데 네가 가서 보복을 하면 되겠느냐? 입장 바꿔 네 동생이 남을 때렸을 때 그 아이 누나나 형이 쫓아와 네 동생을 때리면 너는 마음이 어떻겠느냐?" 라고 하며 나보다 먼저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아량을 일러 주셨다. 그래서인지 나의 장점 중 하나인 남의 고통이나 슬픔을 잘 헤아리는 면이 순전히 어머니의 교육 덕분인 듯하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님에 의해 탄생 하였고 부모님의 사랑으로 양육되어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은 없는 것이다.

한데 그런 부모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해하는 일이 주변에서 종종 일어나고 있으니 인간으로서 어찌 이런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일을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얼마 전 전국에서 공부를 1등 하라는 어머니의 집요한 강요에 못 이겨 부모를 해친 어느 고등학생에 대한 뉴스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물론 성적이 떨어지면 아들을 야구방망이를 들어 체벌을 가한 어머니도 지나친 점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다고 하여도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를 향해 어찌 칼끝을 겨눌 수 있단 말인가.

힘들 때 고통스러울 때 "어머니!" 라고 부르기만 하여도 이렇듯 가슴이 따뜻해지고 그 숭고한 사랑과 희생에 목이 메는데 어떻게 그런 어머니를 향해 자식으로서 독(毒)을 품는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그 학생은 이 말을 되뇔 필요가 있다. 유대의 격언 인 '신(神)이 모든 곳에 다 있을 수 없으므로 어머니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그것이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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