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포럼] 이하형 ㆍ 대덕대 경찰행정학 교수

▲이하형ㆍ대덕대 경찰행정학 교수
사회 각 분야에서 행정이란 말이 많이 사용되지만, 정작 행정이란 무엇이며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하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워 당혹스러워진다.

행정은 우리 곁에 항상 있으면서도 그 실체가 뚜렷이 보이지 않아, 다가서기 힘든 괴물로 언제부턴가 자리하고 있다.

정치를 행하거나 정무를 집행한다는 정형적 개념의 행정은 근원적으로 나누어주고, 도와주고 서비스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행정에서는 근원적 개념인 봉사가 강조되고 있는 반면에, 우리에게 행정은 아직까지도 권한을 지닌 지배 또는 집행이라는 정형적 의미로 일부 사용되고 있기에 접근하기 어려운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손님이 많을수록 싱글벙글하는 미국 식당의 종업원을 보면서, 웃을수록 쌓여지는 탁자 위 팁을 본다. 정액월급을 받는 종업원의 입장에서 보면 손님이 적을수록 좋은 것이고, 손님이 많을 경우 종업원의 친절을 기대하기 어렵다.

민원인의 증가에 따라 공무원의 친절도가 저하되는 현상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된다.

별다른 허리운동이 필요 없을 정도로 깍듯하게 인사를 해대는 일본사람들. 그러나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노인을 보아도 일어서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들의 표면성에 고개가 저어지면서도, 스스럼없이 노인공경을 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떠오른다.

두 사례는 행정이 선진국의 제도를 무조건 따라서도 안 되고, 잘못된 것을 시정만 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 주위에는 조금만 주의하면 우리 국민이 만들어낸, 그러나 공식화되지 않은 많은 좋은 제도들이 있다.

행정은 이렇게 공식화되지 않은 제도를 발굴 및 개선하여 국민에게 봉사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행정은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이미 존재하는 유를 공식화시키고 제도화시키는 것 역시 행정의 중요한 역할이다.

국민의 신바람은 국민을 편하고 자유롭게 해주는 제도를 행정이 계속 발굴·수정하여 수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좋은 행정은 높은 자리에 있는 머리 좋은 몇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생적으로 나오는 비공식적 제도를 적극적으로 공식화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우리 시대에서는 어떤 행정의 원리를 필요로 하는가? 먼저 지배가 아닌 봉사와 서비스 개념의 행정이며, 현재 행정가들 사이에 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봉사라는 행정의 원리에는 행정가들의 의식과 행동양식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이때의 봉사는 단순히 외형적으로만 하는 전시행정으로서의 행위적 봉사가 아니라, 봉사라는 규범이 내면화되어 스스로 우러나오는 태도적 봉사를 말한다.

또한 우리 시대는 경영과 경제마인드를 지닌 기업가적 행정의 원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 시대가 원하는 행정은 강가에서 고기를 잡아 매운탕을 끊여주고 설거지와 주위정리까지 해주는 행정이 아니라, 고기를 잡고ㆍ먹고ㆍ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행정일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능률적인 고기잡이 방법과 조리방법이 비공식적으로 퍼져 있다면,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공식화시키는 것이 행정의 원리이다.

얼음이 얼면 썰매 만드는 법을 알려주어 얼음을 더 잘 즐기게 하고, 강가에서 물을 즐기는 방법을 알려주며, 배를 태워 노를 저어주는 행정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해주는 행정. 이것이 우리 시대에서 필요로 하는 행정의 원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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