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훌륭한 조상님을 둔 우리 민족은 어찌 보면 참으로 복(福) 많은 민족이다. 그래서인지 이즈막 식당엘 가보면 우리 고유의 음식을 잘 보전하는 곳이 많다. 이에 그치지 않고 요리 하는 사람의 정성을 깃들여 고객들의 입맛을 맞추는 식당들이 늘고 있다. 더구나 다행인 것은 그런 식당을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졌다고 믿어온 우리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다는 점이다.
며칠 전 큰 딸의 직장이 있는 전남 목포를 찾았었다. 나를 위해 단골 맛 집을 가겠다는 딸을 따라 나섰다. 도착해 보니 내부 인테리어가 깨끔한 보리밥 집이었다. 모처럼 만난 딸이 사 준다는 게 고작 보리밥이란 말인가 싶어 내심 실망할 때였다.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수십 가지의 반찬이 내 앞에 놓이기 시작했다. 취나물, 고사리, 도라지 등의 산채는 물론시금치나물, 무생채, 콩나물 등도 있었다. 돼지고기 수육 뿐 만 아니라 온갖 채소의 쌈 종류와 생선 등의 해산물이 상 가득 놓였다. 반찬 하나하나를 식당 주인이 만든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된장, 고추장을 직접 담가서 사용한다는 사실에 입이 벌어졌다.
보리밥 하면 어린 날 가난할 때 추억이 떠올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날 그 식당에서 먹은 보리밥은 여태껏 내가 먹어본 보리밥 중에 최고로 맛있었다. 무엇보다 매콤한 맛의 고추장은 입에 착착 감겼으며 된장찌개에서 풍기는 풍미는 어린 날 어머니가 끓여주던 그 맛을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단숨에 보리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하였다.
지난날 가난의 대명사로 떠올렸던 꽁 보리밥도 이렇듯 정성을 기울여 곁들이는 반찬에 남다른 신경을 쓴다면 그야말로 산해진미나 다름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보리밥을 여느 음식못지 않게 격상 시킨 식당 주인의 노력과 지혜를 먹어서인지 그 날은 허허롭던 가슴마저 꽉 차 속이 매우 든든했었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