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등재 … 세계로 뻗어나갈 계기"
무형유산 중요성 인식 인프라 구축 시급
국립택견시범단 창립…시민의 관심 필요
기업체·학교 체험코스 마련 저변 확대

2000년 전 웅혼한 고구려의 기상을 담아 탄생된 민족무예 택견이 지난달 28일 세계 무술 가운데 최초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

국내 중요무형문화재(제76호) 지정을 넘어 전 세계 인류의 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택견이 세계화의 길을 열어갈 명분의 열쇠를 거머줬다.

정통 택견의 맥을 잇고 있는 제2대 예능보유자 운암(雲巖) 정경화 선생(57·사진)을 만나 인류무형유산 등재의 의의와 세계화의 길을 들어본다. /편집자주

△ 세계인류무형유산 등재 의의와 소감은?
중요무형문화재 택견이 무예 종목으로서는 유일하게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거듭나게 됐다. 감개무량하고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택견 발전의 명분을 얻었다.
그러나 인류무형유산이란 위상에 걸맞게 세계에 널리 알려야 빛이 나는 일이다. 등재가 끝이 아니고 세계가 인정하는 유일한 무예로서 택견의 가치를 국민들께서 깨달아야 한다. 국민들의 관심이 뒷받침될 때 택견이 오래도록 잘 전승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세계인과 함께 나누는 훌륭한 무예로 발전할 수 있다.

△ 등재 과정의 에피소드.
2008년에 이미 등재 신청서를 접수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130여 개 문화재가 신청하면서 너무 많이 몰려 20개 정도가 선별 신청될 정도였다. 이번에 재도전해 등재에 성공했다. 세계무술연맹이 유네스코 무형유산 정부간위원회 자문기구로 승인돼 우리나라가 회원국인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중국의 쿵푸도 신청했지만 다섯 가지 심사요건 중 두 가지에서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와 정보보완 권고판정을 받았다. 중국은 보완신청할 경우 탈락하면 4년간 재신청할 수 없는 규정상 모험이라 판단하고 포기했다. 우리 택견은 철저한 사전준비로 모든 요건을 충족하면서 등재 권고판정을 받아 무예 종목 중 세계에서 첫 번째로 인류무형유산에 인정되는 큰 상징적 의미를 보유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의 검도와 스탭 등이 비슷하다며 문제삼았지만, 선정 당일에는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 실질적 지원이 가장 중요할텐데.
세계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됐다고 실질적인 지원이 따르는 것은 아니다. 문화재청이 해외공연 등에 대한 일부 지원책을 강구하려한다는데 정확한 내용은 모른다.
최소 5∼6명이 시범을 보여야 공연이 이뤄지는데 그동안의 해외공연 지원은 한 두 명이 가까운 이웃나라에만 다녀올 수 있는 정도에 그쳤다. 그마저도 항공비만 지원되고 체류비는 지원이 없는 등 민망한 수준이다.
현재 국가의 택견에 대한 지원은 전승활동비로 예능보유자 월 130만 원과 전수조교 70만 원, 해마다 여는 예능보유자 공개발표회에 600만 원이 전부다.

△ 유네스코가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권고하지 않나?
등재의 전제 조건인 다섯 가지 요건 중에 국가가 인류무형유산에 대한 보호 조치를 다짐해야 하는 항목이 있다. 이를 가시화시켜 인류무형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도록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 재정 지원이 가시화된다면.
무엇보다 인프라 구축이 가장 시급하다. 현재의 전수관은 수련관 내에서 공연이 가능해야 하는데 너무 좁다. 외부인들이 택견을 접하기 위해 방문을 해도 택견 소개 영상을 보여 줄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또 많은 사람들이 명상과 수련을 함께 할 수 있는 수련원을 만들고 싶다.
세계무술공원에 3만 3000㎡(1만 평) 규모의 택견촌을 조성해 민속촌처럼 전수생들이 실제로 생활하면서 시범을 보이고 수련하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

△ 시립택견단의 역할도 커질텐데.
인류무형유산 등재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냈으니 이제는 이름만이 아닌 제대로 된 시립택견단의 활용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충주시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
전국에서 유일한 택견단이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택견 시범은 몸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단원들은 30∼40대가 되면 부상의 위험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현재 단원 13명 중 반은 부상을 입은 상태다. 계속되는 시범 공연으로 다친 상태에서 또 다치게 된다. 처우 개선과 예우가 절실한 실정이다.
더 나아가 국가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립택견시범단 창립이 요구된다.

△ 문화재인 택견 발전이 더딘 이유는?
한 마디로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83년 택견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결여돼 있다. 또 기득권자들의 저항도 존재한다. 태권도나 유도, 검도, 합기도처럼 특수교육기관이나 경찰, 사관학교 등 필수적으로 무술을 배워야 하는 곳에서 택견을 정규과목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 국가적 차원에서 정규과목으로 지정하려는 의지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 택견계 불협화음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택견계가 상당히 복잡한 실정인 게 사실이다. 원칙을 지켜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일인데 이를 무시한 행동의 결과다. 택견계 단체들이 서로 욕심이 있기 때문에 헤게모니 쟁탈전이 벌어지며 도매급으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택견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우선 충주시가 전수관의 체제 정비를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태권도는 국기원이 중심이듯 택견은 전수관이 중심이 돼야 한다. 전수관이 택견의 성지로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문화재를 우뚝 세우는 길 밖에 없다.
전수관을 중심으로 택견의 교육을 맡고, 협회는 울타리가 돼 각종 대회를 주관하며 상생을 도모해야 한다.
택견계가 먼저 국내 통합을 이뤄야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없어질 것이다. 지금의 단체가 각자 해외로 나가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단체마다 이름만 같을 뿐 동작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시민들께서도 무조건 부정적 시각이 아니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길 바란다. 세계인류무형유산이란 좋은 기회가 왔다. 택견의 기회만이 아닌 충주의 기회다. 시민들께서 관심을 가져주시면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 현재 국내외 택견 보급현황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전승제도에 의해 전수생, 이수자, 전수조교, 예능보유자로 구분된다. 전수생이 100명, 이수자 40명, 전수조교 2명이고 예능보유자가 1명이다.
지도자 교육을 받은 사범들이 운영하는 사설 전수관은 전국에 80여 곳이 있고, 사단법인이 5∼6개, 문화재청이 승인한 한국택견협회가 있다. 나머지는 비택견인이다. 여러 단체의 난립으로 택견이 왜곡되고 있다. 해외에는 10개 지부가 있다. 일반 택견인과 학생, 방과후활동이나 문화센터, 대학 등에서 택견을 익힌 분들을 모두 포함하면 택견인구는 5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 그동안 배출한 제자들은 얼마나.
1995년 예능보유자에 지정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4단계로 구분되는 엄격한 전승제도가 있다. 보유자가 5년 이상 수련자를 대상으로 전수자를 선정하고, 이들이 3년 이상 더 수련한 뒤 평가를 거쳐 이수자로 선정된다. 대략 10년 정도가 걸리는 어려운 과정이다. 이같은 엄격한 절차를 거쳐 배출된 전수자는 10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 저변 확산을 위한 국내외 보급 계획은?
우선 학점은행제를 활성화시켜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택견 전공으로 60학점까지 이수할 수 있다. 학사학위를 이미 취득한 사람도 택견 관련 35학점만 이수하면 예술학사학위 취득이 가능하다. 또 택견 체험코스를 만들어 전국의 기업체나 학교와 체류형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종배 시장께서도 공무원부터 택견에 대한 인식을 높여야겠다며 아침 업무 전에 택견생활체조를 실시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안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우선 충주시민이 알아야 충주를 중심으로 전국과 세계에 택견이 확산될 수 있다.

△ 10년 후 택견은 어떤 모습일지.
택견계가 대통합을 이뤄 한 몸짓으로 세계화에 힘쓰고 있기를 바란다. 국가적 차원에서 택견 지원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 모든 국민이 전국 어디에서나 일상적으로 우리의 전통 택견 동작을 익히고, 현재 10개의 해외 지부가 20개 이상으로 늘어나 있으면 좋겠다.
또 택견촌이 만들어져 택견의 메카답게 충주가 택견 보급에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충주=이현기자

▲ 택견 예능보유자 정경화씨. © 편집부
{루미광고}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