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결혼식 초대장이 4개나 되었고, 장례식장은 대전과 단양으로 두 지역을 다녀와야 했다. 그 중에 종중 어른들을 뵙는 소종계가 있었으며, 같은 시간에 고향 친구들과의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다. 더욱이 오후에는 충북수필문학 출간 기념회와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는데 수상자로 선정되어참석해야 되는 일이다. 이처럼 빼곡한 하루 일정을 소화시키기에는 몸이 몇 개라도 부족할 판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마도 흡사하리라 생각된다.

고심 끝에 일정을 뒤로하고 한 후배의 결혼식장을 찾아갔다. 식장 주변은 온통 차량들로 붐비고 주차할 공간마저 마땅치 않다. 간신히 식장에 들어서니 마치 장터처럼 소란스럽다. 어수선한 가운데도 은은한 브람스의 웨딩마치 속에 선녀 같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가 우아하고 기품 있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입장한다. 여자는 일생을 살면서 여성의 3대 원칙에 의해살아 간다고 한다.

첫 번째는 아버지로서 낳아 길러주시고 교육시켜20여 년간을 함께 살았고 두 번째는 남편으로서 함께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며 살고 세 번째는 아들로서 노후를 의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한다. 식장에서 아버지 곁을 떠나는 마지막 행진으로 두 번째 남자 곁으로 다가가는 최초의 행진을 신부는 의식으로 치른다. 나도 과년한 딸이 있어서 그런지 아버지가 딸을 사위에게 인도 할 때는 마음이 찡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겼던 딸을 보내는 부모 마음이야 오죽 하겠는가. 신부 아버지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스텝이 엉킨다. 맞잡은 손끝이 파르르 떨리며, 아버지와 딸의 체온이 서로 공유하는 애 틋함을 본다.

이때가 예식중 제일 가슴 뭉클하다. 주례가 주례사를 하는데도 여전히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두 귀를 열어 놓아도 주례의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은근히 짜증이 나고 화가 난다. 내가 결혼 했을 때는 고인이 되셨지만 모시고 있던 교육장님께서 주례를 서 주셨다. 허나 지금은 한 구절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주례사를 들으면 마치 나에게 하는 주례사라고 생각하고 경청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주례사가 끝나고 축도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주례가 목사님이었음을 알았으니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식이 끝나고 신랑 신부가 행진 하는 것을 퇴장이라고 말하는 사회자도 있다. 이제 막 인생의 새 출발을 시작하려 하는데 퇴장 시킨단 웬 말인가.

또한 진행하는 사회자가 너무 장난스럽게 하는 것도 성스러워야 할 혼사를 진부하게 한다. 신랑이 신부를 안고 헹가레 치면서 '봉 잡았다'고 외치는 것을 보노라니 정말 아찔했다. 결혼식장을 나오면서 즐거워야 함에도 몹시 불쾌하고 마음 한구석 씁쓸했다. 매번 결혼식장을 가보지만 가장 성스러워야할 결혼식장이 장터의 부산함처럼 어수선하기 이를데 없으니 한심할 뿐이다. 결혼식장의 모습은 결혼식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닌 허울인 듯하다. 또한 결혼 초대장을 받고 축의금을 인편이나 우편으로 보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래도 이해한다지만 예식장까지 가서 식장엔 가지 않고 식당으로 직행하여 식사나 하고 오는 식의 결혼 축하가 거의 대부분 축하객의 모습이다.

이런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누구나 개탄하고 공감하면서도 그 입장이 되면 똑같이 되풀이 하고 있다. 기왕에 황금 같은 시간 주말을 이용하여 예식장까지 갔다면 진정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준비한 예식에 참가하여 축하해 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예식장(禮式場)이 지금은 예(禮)는 실종되고 식(式)만 남은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예는 잘 차려 입은 한 벌 옷과 같은 것이어서 지키기에 거추장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켜져야 보기에도 근사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우리는 최첨단의 문명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후진성 결혼 문화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



/정관영 공학박사, 충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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