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융이 언급했듯 그동안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기 위한 가면을 쓴 '나', 본능과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나'가 되는 나이 탓인가. 그러고 보니 털어놓지 못할 일이 별반 없는 듯하다. 지난날 20대엔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혼돈의 시기가 있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곤 했었다. 이런 내게 어느 잡지사의 권유 한마디는 가슴에 헛된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당시 모 여성 잡지가 인기리에 발행되고 있었다. 한데 날보고 그 잡지사에서 표지 모델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간곡히 해왔었다. 이를 안 어머니는 노발대발 하면서 딴따라(?) 패가 된다면 자식으로 더 이상 인정 하지 않을 터이니 선택에 심사숙고하라는 엄포까지 놓았었다. 그때만 하여도 모델이나 연예인에 대한 시선이 요즘처럼 선망의 눈길만은 결코 아니었다. 여자의 경우 배우, 탤런트, 모델 등의 연예인이 되면 팔자가 세어 삶이 평탄하지 않다는 고루한 생각이 있었던 때이다. 나의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의 딸자식이 좋은 남자 만나 결혼 하여 아들 딸 낳고 현모양처로 살아가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난 모델의 꿈이 어머니의 반대로 무산 된 이후 연기자가 되는 희망을 버리지 못했었다. 하여 어머니 몰래 몇 년을 연기자 학원을 다닌 적 있었다. 그땐 진정 훌륭한 연기자가 되는 게 최고의 꿈이었었다. 하지만 어머니한테 그 사실을 들킨 후 호되게 꾸지람을 듣고 나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때나 이때나 연예인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엔 매우 화려했다. 대중들의 갈채를 받는 것은 물론 많은 돈을 힘들이지 않고 단숨에 벌 수 있는 게 연예인이기도 하다.

남들은 평생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손에 쥘 수 없는 큰돈을 연예인들은 대중들의 인기 만 등에 업으면 쉽사리 만질 수 있기도 하다. 어디 이뿐이랴. 젊은 나이에 대중들의 갈채와 돈을 양 손에 거머쥐니 그야말로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지 않는가. 나의 어머니는 그 때 이미 이것을 경계 하였었다. 만에 하나 내가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 되어 대중들의 갈채와 많은 부(富)를 쌓았다고 하여도 그것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라고 어머니는 말씀 하셨었다. 세상에서 가장 헤어나기 어려울 만큼 중독성이 강한 것은 대중의 인기와 재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쉬 얻은 것은 또한 쉽게 잃는 법이니 그 인기와 재물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평상심을 잃게 되어 자칫 폐인이 될 소지가 농후하다는 어머니 말씀이었다. 항간에 일어나는 연예인들의 자살을 지켜보며 이제야 어머니의 그 말씀을 가슴 깊이 깨우치게 된다. 이즈막 젊은이들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을 몹시 부러워한다. 연예인 만 되면 남들보다 몇 십 년은 인생이 앞서간다고 믿고 있다. 그렇긴 하다. 인기만 얻으면 CF 촬영으로 떼 돈 벌겠다 영화, 텔레비전의 출연료 받겠다 대중들 앞에 얼굴만 내밀면 그게 다 돈으로 환산되니 어찌 이들이 부럽지 않으랴. 더구나 요즘처럼 고물가, 극심한 취업난엔 어찌 보면 연예인이 되는 일은 로또 맞는 거나 다름없는 환상을 안겨주잖은가.


하지만 감히 젊은이들에게 말하련다. 연예인이 되어 손에 넣는 인기와 부(富)도 행복의 한 방편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평범한 삶을 누리는 일도 그에 못지않은 행복이 존재 한다. 돌이켜 보노라니 나 같은 경우 그동안 피땀 흘리며 걸었던 삶의 여정도 순간순간이 행복이었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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