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최초 금탑산업훈장 류근모 장안농장 대표

겨울에 수확하지 않은 상추가 얼고 시들어 죽었다가 봄에 거기서 새 움이 올라온다. 부활상추로 이름 붙여 부활절에 일반 상추의 40배 값을 받고 팔았다.

'농사 예술가' 류근모 장안농장 대표(51)는 그런 사람이다. 상추가 아니라 가능성을 심는다. 상추가 아니라 스토리를 판다.

농업인 최초 금탑산업훈장과 최초 ISO, USDA-NOP 인증 등 최초의 아이콘, 류 대표를 만나 한국 농업의 미래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쌈채소로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영광이다. 오랜 시간 저를 믿어 주고 같이 걸어 온 협력농장과 직원들께 감사드리며 더 열심히 농사 짓겠다. 금탑산업훈장은 농업계 사람으로는 역대 두 번째다(농업계 최초 수상자는 지난 2006년 국내 최대 닭고기 가공전문업체인 ㈜하림의 김홍국 회장이다. 농사를 짓는 수상자로는 류 대표가 최초인 셈). 하지만 농사 짓는 사람이 너무 유명해지는 것은 부담스럽다. 나는 농사짓는 사람이다.


-농사 지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늘 모든 것이 어려웠다. 농업은 항상 불경기에 있었다. 마음 편하게 일했던 적이 없다. 농사를 안 지을 수는 없어서, 후손들을 위해 누군가는 농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워도 긍정의 힘을 믿고 '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요행을 바라며 농사 짓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니다.


-농업인과 경영학도의 롤모델이다. 성공의 열쇠는.

△예술과 열정이다. 농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 얼음 위에서도 타오르는 불꽃같은 열정이 있어야 한다. 나는 머리 속에 상추만 있는 사람이다. 모든 가치 기준이 상추다. 명품은 잘 키우는 것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예술의 경지에서 만들어야 한다. 좋은 농산물은 많다. 넘친다. 같은 곡도 누가 무슨 악기로 연주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예술로까지 끌어 올려야 한다.


-100억 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판로 구조는.

△연매출은 130억 원 정도 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판매가 비슷한 비율이다. 유기농 채소 인터넷 판매(www.10farmer.co.kr)를 국내 최초로 시작해 지금은 회원 수가 1만 명을 넘어섰다. 천리안 시절, 당시로서는 거금인 300만 원을 주고 서울로 전문가를 찾아가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농협과 대형 할인점 등에도 납품한다. 우리는 팔고 싶은 데만 판다. 돈 준다고 무조건 팔지 않는다.


-한·미FTA가 농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솔직히 FTA에 대해 잘 모른다. FTA 비준이 되건 안되건 우리는 그동안과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 농사를 지을거다. 더 어려워질 거라는 건 안다. 지속적 수출이 중요한데 유기농 인증도 해당 국가의 인증을 다시 받아야 하고 수출단지 지정, 규정에 맞은 세척시설 등 여러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는 6년 전부터 수출을 생각해 미국과 유럽의 유기농 인증을 받았다. 지금은 태평양의 미군 주둔 사령부에 채소를 공급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농업인에게 가장 요구되는 덕목은.

△자신감이다. 나도 개방이 두렵다. 우리 농장 정도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조그만한 규모다. 하지만 두렵고 힘들다고 농사를 짓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다.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자신감을 갖고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


-요즘은 어떤 농업의 미래를 만들고 있나.

△'장안식탁'이다. 앞으로 농업 유통의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우리는 시장 흐름을 10년 앞서 간다. 앞으로는 한의사와 영양사, 농부들이 모여 소비자와 완전 직거래하는 방식으로 변화될 전망이다. 전문가의 레시피를 담은 식단을 짜서 유기농 식품을 집으로 배달해 주는 새로운 판매방식을 시작했다. 매월 일정 금액을 내면 1주일에 4차례 농산물과 계란, 고기, 누룽지, 육류 등 1주일분 유기농 식재료를 배달한다. 반응이 좋아 주문이 첫 주 100건에서 300건으로 급격히 늘고 있는 상태다. 앞으로는 주문제 맞춤형 식단을 택배로 판매하게 될 것이다.


-브랜드 '열명의 농부'는 어떤 의미.

△열 명이란 꽉 찬 상태를 상징한다. 열 명이 백 명, 백 명이 만 명이 되길 희망하며 농사짓겠다는 의미다. 3농부 운동이란 걸 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생산농부)만이 농부가 아니고, 우리나라 농산물을 팔면 판매농부, 그 우리 농산물을 소비하면 소비농부다. 판매농부 10만 명과 소비농부 100만 명을 확보하면 한국 유기농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큰 틀이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유기농 식당을 열 계획이라던데.

△'열명의 농부 식당'이 최근 허가절차와 설계를 끝마쳤다. 내년 3월 문을 연다. 만 원짜리 한 장으로 50가지 콩고기 요리와 100가지 유기농샐러드 등을 무제한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식당이다. 목표는 체인점 사업이다. 1년간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고 체인점을 낼 계획이다. 단 가맹을 원하는 부부들은 6개월간 우리 농장에 와서 농사를 지어야 한다. 농사 짓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일반인 식탁에 올라가는 싼 유기농 채소는 없나.

△얼마든지 가능하다. 현재도 일반 농산물보다 15~20% 높은 정도의 가격이다. 우리처럼 직거래를 통하면 일반 농산물과 별 차이 없다. 1등품만을 비교했을 때 가격차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한 끼라도 우리 유기농산물을 식탁에 올리는 게 목표다. 가격을 낮추는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왜 전국의 협력농장이 필요한가.

△친환경 농산물만 생산하는 협력농장이 전국에 120개 있다. 가령 브로콜리를 연중 공급하려면 지역별로 사계절 기후가 다르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공급해야 한다. 생산농부가 1품종당 7명 필요하다. 우리는 쌈채소를 사들이거나 납품 받는 게 아니다. 협업·협동 체계다. ERP시스템을 갖춰 물류를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매일 농산물 검사을 실시하고, 생산추적 이력제로 투명하게 공급한다. 이 시스템을 만드는 데 10년 걸렸다.


-성공 귀농의 아이콘으로서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일을 조금 하면서 돈을 많이 벌수는 없다. 우리 농장에도 귀농을 희망하며 상담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을 조금하면서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을 원하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불쑥 찾아와 귀농을 얘기하는 분들에게는 냉정하게 얘기한다. 모 대기업에서 30년 근무한 임원이 항상 차에 밀짚모자를 갖고 다니며 귀농을 꿈 꿔오다 은퇴 뒤 찾아 왔지만 여기서 일해 본 뒤 두 달 만에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며 두 손 들고 돌아갔다. 이런 분들 많다.


-20년 뒤의 장안농장을 그려본다면.

△세계에서 가장 이름있는 유기농 체험농장이 돼 있을 것이다. 체험농장을 내년 3월 본격 개방한다. 유기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농장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최초, 최대의 체험장이다. 심고 기르고 수확하는 모든 과정을 체험하게 해 안전한 먹거리가 어떻게 나오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농장, 유기농을 체험하는 농장, 누구나 체험하고 싶은 농장이 될 것이다. 지금도 농장 안내 책자와 안내판을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어 등 4개국어로 만들고 있다. 목표대로 진행 중이다. 다만 저는 대표에서 물러나 있을 것이다. 농사는 계속 짓고 있겠지만….


<프로필>

△1981 영진전문대학 기계설계학과 졸업
△1996 장안농장 설립
△2000 국내 최초 농가 친환경종합쇼핑몰 개점
△2002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친환경 농산물 유기재배 인증
△2003 농림부 '우리의 농업을 여는 1000인' 선정
△2004 유기농 최초 ISO9001,2000 인증
△2006 신지식농업인상
△2007 국내 최초 영농법인 ERP 시스탬 인증
△2007 제4회 친환경농업대상 우수상
△2009 국제유기인증 USDA-NOP, IFOAM 획득
△2010 스타팜 대한민국 100대 농장 선정
△2011 농업인의 날 금탑산업훈장 수상(제700호)
△가족 : 부인 이윤숙 여사와 1남 1녀
△취미 : 독서
△주량 : 전혀 못함

▲ 상추 모종을 들어보이고 있는 류근모 장안농장 대표.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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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안농장.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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