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무는 연말이 오면 흔히들 상투적인 말로 "올 해는 다사다난했던 한해 였다." 라고한다. 그러면서 '자불자족(自不自足)'이라도 하듯이 들뜬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려고 한다. 마치 다가오는 새해는 자신들에게 커다란 희망은 물론 자족할 수 있는 거창한 일들이 생길 것처럼 말이다.

영어에서 '은혜'또는 '은총'이라는 단어는 grace인데 그것의 어원을 따져보면 라틴어에서는 gratia이며 여기서 다시 gratia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gratus이다. 은혜 또는 은총이라는 단어의 뜻 속에는 우리가 마음깊이 새겨야 할 '공짜의 기쁨'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과연 공짜의 기쁨에 대한 행복을 누려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마도 모든 일에 감사하며 주변의 사람들에게 따뜻한 인정과 사랑을 베풀며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자족을 깨닫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는 공짜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울러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은 공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어쩌면 이율배반적인 역설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야만이 우리에게 남는 것에 감사하며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들은 '배를 채울 먹거리가 있고, 돌아가 잠을 청할 수 있는 집이 있으면 감사하다.'라는 말을 한다. 소박하면서도 미묘한 느낌을 자아내는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설령 이 두 가지가 만족된다고 할지라도, 성인군자가 아닌 우리들이 과연 행복하다고 생각할까? 라는 의구심도 생긴다. 그러기에 행복하게 되는 것은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자족할 줄 알아야 한다.

뉴욕 주립대학에서 실험한 예이다. 한 집단의 실험 대상자들에게는 '내가 ......가 아니라서 기쁘다'라는 문장을 제시하고 또 다른 집단의 실험대상자들에게는 '내가 ......(이) 라면 좋았을텐데'라는 문장을 제시하고 각각 다섯 번씩 반복해서 문장을 완성하도록 시켰다. 그 결과 전자의 경우에는 실험 대상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전보다 훨씬 더 만족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고,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는 자신들의 삶에 더욱 큰 불만을 갖게 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실험들을 통해서 우리는 각자 자신의 관점을 조금씩 바꾸어 생각함으로 인해서 삶에 대해서는 더욱더 긍정적이면서 조금은 작게 만족을 할 수도 있음을 배워야 한다. 또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자세가 가장 중요함을 깨달아야 하며, 자신의 '존재(existence)' 자체만으로도 자족할 줄 알고 행복 할 수 있다면 성숙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본다.' 인간의 의미에 대한 탐구(Man's search for meaning)'의 저자 빅터 프랭클(Vitor Frankle)은 진정한 행복은 성숙에 있으며 그 길은 자신(self)으로부터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족을 깨닫기 위해서는 정상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반성을 하면서 결심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지식이나 의식 따위가 아니라 습관이다. 습관은 반복을 통하여 형성되는 무의식적인 반응으로써 좋은 마음에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행동의 결실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갈구하는 행복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통해서 얻어진다고 감히 말 할 수 있겠다. 항상 모든 일에 대하여 감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베풀어 주려는 생각만해도 급박하고 야속하게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과 타인' 사이의 행복한 삶을 만드는 훌륭한 기회가 되고 자족의 근원이 되리라 굳게 믿어본다.



/박기태(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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