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수성가 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신화를 이룬 남동생은 평소 몇 가지 사업 성공에 대한 철칙을 나름대로 세우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의 꾸미지 않는 심신(心身)이 그것이다. 동생은 어인일인지 다른 형제들과 달리 30대 후반부터 듬성듬성 흰머리가 돋더니 요즘엔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명절 때나 얼굴을 볼 수 있는 동생에게 머리카락을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라고 권했더니 정색을 한다. 자연 그대로 살아야한다고 주장까지 한다. 그 말에 머리만 검은색으로 물들이면 동안(童顔)이라서 10년은 더 젊어 보일 거라고 부추겼다. 그러면 사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고개를 가로 젓는다. 동생의 말인즉 자신의 외모를 젊어보이게 하기 위해 흰 머리카락을 검은색으로 물들여 남의 눈을 가리면서까지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는 엉뚱한 말이었다. 그 말에 요즘은 젊어 보이려고 남성들도 성형을 하는 세태인데 너무 고루한 사고방식이 아니냐고 충고를 했다. 그러자 동생은 꾸밈없는 그대로의 순수한 모습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못을 박는다.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동생은 군에서 제대한 후 운영이 안 돼 선배가 손을 놓은 사업체를 인수했다. 그리곤 쓰러졌던 회사를 순전히 신뢰와 신용, 인내와 끈기만으로 오늘날 자본금이 탄탄한 중소기업으로 일으켜 세웠다. 그래서인지 이즈막엔 그 업계에서는 동생 이름 석자 만 대면 " 아! 그 사람 참 미더운 사람이지, 사업가로선 보기 드물게 원칙과 정직을 지키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런 평가를 받기까진 동생의 성품이 일조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거짓을 모르고 겸손하며 소탈한 인간적인 면모를 갖춘 동생의 됨됨이 앞에 소비자들도 매료돼 믿고 물품을 구입하고 또 일을 맡겼던 것이다. 무엇보다 동생 회사의 물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인정한 것은 회사 대표가 직접 세일에 나서는 적극적인 성실성과 정직과 진실을 바탕으로 물건을 생산, 시공까지 하는 것에 믿음을 지녔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외모를 중요시 하는 풍조가 일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안(童顔) 가꾸기 열풍을 비롯 성형이 일상화 되었다. 오히려 외모를 가꾸지 않고 생긴 그대로 사는 사람이 무능해 보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야말로 '신체의 모든 것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훼손하지 않는 게 효의 시작' 이라는 유교의 가르침은 구시대의 낡은 생각으로 치부된 지 이미 오래이다. 그렇지만 동생은 이런 세태에 부응하지 않고 겉모습보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오로지 정직과 성실로 소비자들의 곁을 다가갔다. 그런 인격을 갖춘 동생을 볼 때마다 누나이지만 오히려 내가 더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하지만 동생의 이런 장점을 한 수 배울 사람들은 나 말고도 또 있지 않을까 싶어 감히 말해본다. 선거철만 돌아오면 후보 정치인들이 외양을 매우 말끔히 단장을 한다. 그동안 성성한 백발과 텁수룩한 수염의 모습으로 유권자들의 동정을 자극하던 후보자들도 정작 선거 기간이 닥쳐오면 머리색은 한결같이 검은색들로 탈바꿈한다.

독일의 경우엔 정치인들이 머리 염색을 해서 젊어보이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달리 보이게 하면 국민을 속이는 행위로 인식 된다는 것이다. 다니엘라 마이어와 클라우스마이어는 『털. 수염과 머리카락을 중심으로 본 체모의 문화사』라는 책을 써 한국에서도 번역 됐다. 이 책에서도 정치인들이 염색을 하는 행위는 '조작'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조작은 거짓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이 사회적응이 빠르다는 해외 토픽을 읽은 적 있다. 그 적응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새해엔 정직과 진정성을 갖춘 사람이 대우 받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 기회에 가져본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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