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 스퀴즈(squeeze)플레이라는 게 있다. 노 아웃이나 원 아웃 주자 3루때 한 점을 내기위해 번트 등을 대는 작전의 하나이다. 점수를 쥐어 짜낸다는 의미로 안타에 의한 쉬운 득점을 기대하기 어렵거나 승부처라고 판단됐을때 주로 등장한다. 정석 보다는 변칙 기습플레이다. 타자가 득점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야구에서 점수를 쥐어짜야 하는 상황처럼 우리 살림살이도 그렇게 되고 있는 양상이다. 치솟는 물가에 임금은 동결되고 공공지출 부문 증가 등의 영향을 받아 중하층의 가계 사정이 마른수건을 다시 짜야할 정도로 팍팍해졌다. 세계적 불황이라고 하지만 여기에 다 이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 편찬자들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바로 이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이다. 유럽의 경기침체가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영국도 이를 피해가지 못하는 반증일 것이다. 중산층의 붕괴는 사회혼란을 불러오기가 십상이다. 정당한 노력의 댓가가 기대에 못 미치면 그 화살은 정부에 돌아가게 된다. 워킹 푸어나 하우스푸어 같은 신종어들이 대세로 자리잡는 것은 제아무리 발버둥쳐도 스스로 현상을 극복할 수 없는 중산층 이하의 분노의 표출이다.월가를 점령하라는 미국인들의 오큐파이(occupy)시위가쓰나미 처럼 전세계로 퍼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고픔(헝그리)와 앵그리(분노)의 상승작용인 셈 이다.


-토끼 해 삶의 불안 더 커져

이 시대 우리의 20대는 취업난,30대는 생계걱정,4∼50대는 노후불안에 대책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노력에 대한 응분의 보상을 기대하기 어려운 왜곡된 사회구조로 인해 세대별 배고픔과 또 다른 세대의 분노는 갈수록 탱천하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시장 등의 재·보선 결과는 바로 헝그리와 앵그리의 종결을 희구하는 민심의 투영이었다. 정치권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에게 경고음을 확실히 울려준 것이다. 그래서인지 단 사흘밖에 남지 않은 토끼해의 세밑이 그 어느 해보다 소란스럽고 심란하며 좌충우돌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여야 정치집단은리모델링과 리스트럭쳐링 하느라 열기가 뜨겁다. 젊은 세대의 앵그리와 중장년층의 헝그리를 삭히지 않고는 멸렬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 진단에 이어 치유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도 환골탈태라는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겉 포장의 몸부림 뒤에는 정권 수성과 탈취라는 공통 아젠다가 자리한다. 입으로만 외치던 민생챙기기에 뒤늦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 해도 진정성과 순수성의 농도는 판단이 어렵다.

여기에 김정일 사망까지 겹쳐 이데올로기 갈등이 노정되고 소통과 통합과는 정반대인 목소리가 넘쳐나 크리스마스 캐롤도 실종됐다.


-정치권이 풀어야 할 대명제

363일전 새해 첫날의 부풀었던 벅참은 온데간데 없고 낙담,절망,회한, 까닭모를 분노가 뉘엇뉘엇 지고 있는 태양의 섬광을 흐리게 한다.

교역 1조달러 달성, G-20정상회의 개최, 자원외교 등 활발하고 성과가 넘쳐보이는 외치의 그늘에는 전체 국민 절반에 가까운 중하층의 삶의 피곤한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는 갈수록 더 해지고보수와 진보, 청년층과 장노년층 등 계층간의 갈등에정치의 실종과 리더십의 궤멸은 무규범의 아노미 현상을 잉태하게 만들었다.

말도 안될것 같은 언어의 희롱과 유희가 먹혀들어가는 건강하지 못한 병세는 바로 헝그리와 앵그리의 퇴치, 또는 개선에 대한 방기(放棄)에 진원을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다는 포기와 자괴감이 팽배해진 이 마당에 며칠 뒤 새로운 한 해를 맞는다고 해서 갑자기 희망이 우리에게 안겨질 것이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 저 요란을 떨며 새로운 정치를 외치는 여야가헝그리와 앵그리의 용해와 동반을 이루지 못하면 그들의 미래는 기약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내년 심판의 시계는 이제 째깍재깍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송구영신하시라.



/이정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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