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열병의 신열을 앓아 본 이는 다 안다. 그야말로 유행가 가사처럼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뿐이다. 사랑을 이루지 못할 경우 열병은 혹독한 통증으로 심신을 파고든다. 더구나 첫사랑이 짝사랑일 경우 통증의 고통은 극에 달한다. 이는 어느 이가 말했듯 사랑의 유효기간이 꽁치통조림 유통 기한보다 더 짧아서일까? 하여 그토록 절절할까? 아무튼 이유는 모르나 사랑이 가슴에서 싹트는 순간 격렬한 감정 앞엔 아무리 지혜로운 이도 눈이 멀게 마련이다. 때론 첫사랑의 힘은 매우 강렬하게 한 인간을 평생 지배하기도 한다.

예로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1265-1321)경우도 첫사랑인 베아트리체를 짝사랑하여 기독교 문학의 최고 백미이자 불후의 걸작인 『신곡』을 남겼다. 그의 작품이 이토록 영원히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베아트리체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 때문이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난 것은 겨우 9살 때이었고 18세 때 두 번째 만남이 공식적 만남의 전부이었다. 단테가 이 때 말 한마디 나눠 보지 못한 채 먼발치서 바라본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천상의 선녀 그대로였다. 훗날 그녀는 단테에겐 우주 같은 경이로운 존재가 되었다. 그런 그녀는 단테로 하여금 『신곡』, 『신생』의 작품을 탄생케 한 최고의 뮤즈가 되기도 했다.

하나 남녀의 사랑이 이렇듯 단테처럼 한 연인을 그것도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여인을 평생 가슴에 품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요즘처럼 일회성 사랑이 난무하는 세태엔 단테 같은 남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설, 영화에서나 대할 수 있는 주인공일 게다. 플라토닉 러브 따윈 구시대의 산물이 된지 이미 오래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 없이도 오로지 쾌락 추구를 위해 본능에 자신의 심신을 맡기기도 한다. 몸 간수가 참으로 소홀해졌다. 남녀가 서로 뜻만 통하면 만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도 아무렇지 않게 서로의 육체를 탐닉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젊은이들의 성 개방 풍조는 우리 기성세대의 책임도 자뭇 크다. 자극적인 영상매체 범람과 원조 교제 등이 그것이다. 그래서일까? 미혼모들이 우리 주위에 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미혼모들의 연령층이 매우 낮아진다는데 있다. 어느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미혼모들의 삶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한창 학문을 탐구할 2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심지어는 나이어린 학생도 있단다. 아이를 양육할 아무런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아이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인생 절반의 실패를 암시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까지 가세해 그들이 설 땅이 없다. 아이를 낳아도 당장 키울 경제적 능력은 물론 머물 집도 없는 형편이다. 경제적 무능력, 사회의 편견이 점점 그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더불어 사는 사회, 밝은 세상 구현은 삶의 고통의 그늘에서 허덕이는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상채기의 환부를 제대로 싸매줄 때 실현 가능하다.

점점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미루고 아이 낳기를 꺼리는 형국에 경위야 어떻든 미혼모들은 새 생명을 이 땅에 탄생하게 한 어머니 아닌가. 이게 아니어도 생명은 존귀하다. 우리 땅에 태어난 아기들은 장차 우리나라의 사회의 한 일원이 될 귀한 몸들이다. 태어난 배경이야 어떻든 엄연한 우리나라 국민의 한사람 아닌가. 그 아이들이 티 없이 무럭무럭 잘 자랄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과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다.

아무리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여도 아직 부모슬하에서 공부나 할 연령인 다수의 미혼모들 아닌가.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겠는가. 하여 이제라도 주위의 미혼모들에게 깊은 관심을 갖고 그들이 마음 놓고 자신에게 태어난 아기들을 양육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참에 젊은 청년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 사랑에도 책임이 뒤따른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할 마음이 아니라면 자신의 행위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여성도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그 여자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 주지만 단 한 가지 해 주지 않는 게 있다. 그건 바로 영원토록 그녀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일이다." 라는 오스카 와일드의 말도 한편 유념해야 하리라. 무엇보다 남자의 마음이 이 언술처럼 유효기간이 짧아선 아니 된다. 애초엔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 듯 열렬했잖은가.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핏줄을 낳았다면 태어난 자식을 위해서라도 부성을 저버려선 안 된다. 책임 회피, 야누스의 얼굴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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