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 후 닷새를 아들과 함께 캐나다의 휘슬러(Whistler)에서 보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아이를 캐나다에서 만난 것은 다름이 아니다. 내가 워낙 스키를 좋아하다 보니 스키장에서 함께 놀자고 간 거다. 아들은 지난 일 년 동안 미국 동부 볼티모어(Baltimore)의 매리어트(Marriot) 호텔에 근무하면서귀국할 틈이 없어 만나지 못했기에, 피차 좋아하는 스키를 함께 즐기면서 함께 있고 싶어서 간 것이다.

내가 먼저 밴쿠버 공항에 도착해 서너 시간 기다리다가 만난 아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전화나 SNS를 통해 소식을 전하지만, 도착장을 빠져 나오는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서울에서 대학 일 년 마치고 해병 입대, 제대 후 미국으로 가 3년여간 대학에서 호텔경영학 공부마치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아직 1-2년 더 외국에 있다가 국내에 들어오겠다는 계획이다.

"아버지란 자식이 자신을 닮아주길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닮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는 존재" 라는 말도 있지만, 따는 그렇다. 가난한 시골출신으로 어렵게 성장한 나와 달리, 좋은 환경에서 다양한 교양과 실력을 쌓아 세계적 인물로 성장하길 기대했다. 그래서 독서, 운동, 악기, 여행 등 다양한 체험을 권유했다.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 과거의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길 기대했으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고교시절 기대에 못 미친 성적 때문에 재수를 했고, 그것도 별로 원하지 않던 대학과 학과에 들어갔었다. 사실 실망이 컸다. 왜 남의 집 자식처럼 더 잘할 수 없을까 야속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군 제대 후 서로 협의해서 원래 하고 싶어 하던 공부를 위해 도미한 것이다.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걱정이 많이 됐다. 공부는 잘 마칠 수 있을지, 마친 뒤 취업은 잘 할 수 있을지 등등. 그래서 재작년 초겨울에는 위로차 방미했다가 그런 문제로 아들과 얼굴을 붉히고 돌아오기도 했다.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가 지나쳐 질책이 되고 만 것이다.

사실 이번에도 사흘간 스키를 함께 타면서, 모처럼 좋은 곳에 갔으니 더 많이 즐기고 싶어서 안달했지만 뜻대로 못했다. 국내에서처럼 아침 일찍 시작해서 많이 즐기고 싶었다. 그러나 아들이 매일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못했다. 스키어라면 누구나 꿈꾸는 휘슬러에 와서 이게 뭔가 하고 부아가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침형인간이 못 돼 일찍 일어나지 못한다는 아들을 일 년 만에 격려하러 가서 화를 낼 수 없었다. 스스로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거나, 또는 자신의 영어 중 읽기 쓰기 능력을 더 계발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니, 스키를 많이 못 타도 아들을 격려하는 것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나의 많은 걱정을 뒤로 한 채 학업을 마치고 취업한 아들은, 함께 하는 동안 자연스레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일 년 더 진행되는 호텔 그룹 내 훈련과정을 마치면 좋은 대우로 스카우트될 수 있고, 그 다음 고급과정을 마치고 경력을 쌓아, 10년 내에 유명호텔의 지배인이 되겠다는 거다. 아이들은 이렇게 큰다. 아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 나름의 목표를 가지고 전진하고 있다. "아버지는 자식의 거울", 또는 "아버지 당신은 카피되고 있습니다." 라는 말도 있지만, 과연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아들과 함께 지내며 대화를 나누다보니, 문제는 내 식대로 성장시키려 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함께 있으면서 뭔가 사주고 싶어 물어도 필요 없다며 사양하는 아들. 먹고 싶은 것을 물어도 아버지 원하는 대로 따라서 먹겠다는 아들. 옷을 사도 저렴한 곳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만 고르는 아들. 학비도 국내보다 조금 더 들 정도로 면제 받아 저렴하게 마쳤다. 그 아들이 대견스럽다. 닷새간의 짧은 만남. 비록 마음껏 스키를 즐기지는 못했지만, 만남 속에서 아들의 미래를 확인하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제는 강요하지 않고 위로와 격려로 그의 미래를 축복하기로 한다. 천생 부모는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격려하며 살아야 할 존재이기에. 헤어지면서 약속했다. 3년 뒤 다시 휘슬러에 가자고, 그 때는 맘껏 스키를 즐기자고.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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