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그녀의 남자친구 '분텀'을 통해서이다. 라오스에서 유학 온 분텀은 공무원이며 국비 장학생으로 이곳에 유학을 왔다. 공부를 하는 동안 한국의 발전 스토리를 실제 체험하고 그 과정을 라오스에 접목시키고 싶어 했다. 가무잡잡한 얼굴에 순한 기가 서려있는 그의 입매가 다부졌다. 분텀은 한국 생활에 대한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여자 친구인 '잔다븐'을 초대했고 그녀도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수학하고 있었다. 그러나 국비장학생이 아니면 수업료가 50%만 면제되기 때문에 가난한 나라 라오스에서 온 젊은이들은 함께 공부하며 학비를 마련하기위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영어에 관심이 많은 나는 외국학생을 만난다는 호기심으로 대학원 동기생에게 그들을 소개 받았다. 몇 번 만나는 동안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자기나라를 위해 무엇인가를 꼭 해내고 싶어 하는 젊은이를 통해 내 존재의 이유에 대한 작은 깨달음도 있었고 가난한 가정 상황에 대한 원망으로 지쳐있었던 내 젊은 날의 모습도 반성이 되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과거 내 어릴 적의 추억이 떠올랐다. 서른 안팎의 그들 생각과 행동이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사소한 경험들을 불러일으켰다. 흑백 사진첩을 넘기듯 즐거웠다. 가끔 자리를 함께 하다 보니 생면부지인 대한민국에서 그들이 좋은 추억을 만들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친절하고 지적이며 부지런한 우리문화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일반 유학생 신분이 아니고 라오스의 중견 공무원으로서 국비로 유학 온 만큼 라오스의 미래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이 대단한 그였기에 한 가지라도 우리나라의 좋은 점을 배워가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잔다븐 또한 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엘리트로 분텀을 도와 라오스 경제 발전에 한몫을 하고자 하는 열렬한 마음을 갖고 있는 미모의 재원이다.

1955년에 66달러이던 대한민국 국민 소득을 2만 달러 시대로 올려놓은 우리들의 과거도 그들처럼 가난한 농업국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았던가. 1인당 국민소득 860달러의 빈국(貧國) 라오스에서 온 그들을 통해 과거 우리의 곁을 떠나 가난을 극복하려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 로타리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유학길에 올랐던 강영우 박사는 맹인으로서 '백악관 대통령 자문위원'까지 지낸 불굴의 한국인이다. 우리나라 해외국비 장학생 1호로 독일로 유학 갔다가 한국경제 발전에 수많은 공을 세운 '백영훈 박사'의 이야기를 함께 하며 분텀과 잔다븐 또한 라오스에 중요한 인물이 되고자 하는 뜨거운 마음을 보여주었다. '가발공장에서 하버드까지'라는 책을 낸 서진규씨도 미국에서의 성공사례를 통해 '나는 희망의 증거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분텀은 졸업을 하여 라오스에 갔고 잔다븐은 이번에 석사학위를 취득 한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한 결과 잔다븐은 한국에 남아서 직장을 구하여 일하다가 내년에 박사과정에 입학하고자 결정했다. 이런 모든 일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장학금을 기꺼이 내주신 분, 직장을 제공 하신 여성 CEO, 한국어가 능통하지 않은 잔다븐을 대신하여 그녀의 통역관이 되어준 대학원생 등 고마운 분들 덕분에 잔다븐이 원하는 진로를 결정 할 수 있게 되었다. 비자문제를 해결하고 입사 면접을 받고나서 잔다븐이 취업이 되자 뛸 듯이 기뻐 우리는 술집으로 몰려갔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신나는 에너지를 생산해낸다. 기분 좋게 동네 참치집에 자리를 잡았다. 잔다븐이 나를 '한국엄마'로 부르고 싶다고 하자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자동아빠'를 하겠다고 나섰다. 단숨에 딸이 생겼다. 아들만 있는 남편에게 잔다븐은 특별한 딸이 되었다.

설날 아침에 잔다븐이 우리 집에 왔다. 두 며느리와 세 아들, 손자와 손녀딸 그리고 잔다븐이 함께한 설날 아침은 웃음꽃이 피었다. 하루를 묵으며 함께 동네 목욕탕에도 갔다. 잔다븐을 막냇동생이라고 소개하는 큰아들이 미덥고 기꺼이 함께 밥상에서 웃고 얘기해주는 며느리들에게 고마웠다.

가족의 울타리를 떠나 낮선 나라에 간다는 것은 대단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분텀이나 잔다븐처럼 공부하러 오는 학생은 물론이고 결혼 이민을 오는 여성들, 그리고 취업을 위해 가족을 떠나오는 많은 아시안 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존경한다. 그들의 용기를 보며 지척에친정 엄마가 있고 내 피붙이 들이 있는 일상이 감사하다. 삶의 용기를 얻는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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