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경화(한국교원대 교수)

공부와 잠 중 어떤 것을 택할까? 일과 결혼 중 어떤 것을 택할까? 사소한 일부터 큰일까지 선택할 일이 시시때때로 생기니, 선택의 기술을 다룬 책들이 주식, 정치, 취업 등 주제만 달리하여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잠깨고 공부하기보다는 우선 잠부터 자고 공부하겠다고 결정했다가 낭패 본 적이 어디 한 두 번인가. 그런데도 또 시험 때면 어김없이 망설이게 된다. 일 하다 때를 놓치면 결혼하지 못한다는 조언에 따라 결혼했는데,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 수도 없이 일을 포기할 뻔했으니 위태위태 버틴 것이 기적과도 같다. 그런데도 후배나 제자가 일과 결혼 중 선택하느라 고민하면, 필자 역시 일 하다 때를 놓칠 위험을 영락없이 강조하게 된다.

골드 미스(gold miss)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조언일까? 골드 미스는 자기계발에 몰두하고 일에서 성공하려고 결혼에 뜻을 두지 않는 나이든 여성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생각해보니 제자나 후배 중에는 정말 결혼하지 않고 자유를 만끽하며 당당하게 지내는 여자들이 제법 많다. 필자의 경우에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모든 정보를 다 수집해놓았어도 집안 일 생겨서 단번에 접은 여행이 많았는데, 소리 없이 뉴욕에 가서 뮤지컬 보고, 이탈리아에 가서 오페라 구경한다니 참으로 달라도 많이 다르게 산다.

영국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 나오는 주인공 노처녀도 직장 생활 잘 하는 골드 미스였다. 그러나 혼자 보내는 주말을 끔찍해하고, 죽은 지 오래되어서야 발견되는 비참한 독신자가 자신이 될까 걱정하면서, 하루빨리 결혼하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의 골드 미스들과 달라 보였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답게 백만장자와 결혼했으니 마지막 순간에 더더욱 현실과는 멀어진 영화였다. 정말 골드 미스들이 브리짓과는 다르게 결혼에 대해 전혀 무관심할까?

주변의 골드 미스들에게 물으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한 후배는 만약 멋진 골드 미스터를 만나면 그 때에는 당장에 결혼할 것이라고 했다. 골드 미스터 생활을 해보았으니 결혼하고도 자신이 자유롭게 지내도록 해줄 것이고, 그러면 현재와 같이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고 했다. 가능한 일이라고도 불가능한 일이라고도 말해줄 수 없어 빙그레 웃기만 했으니 아마 필자의 난처해하는 마음을 짐작했을 것이다. 문제는 골드 미스에 비해 골드 미스터가 아주 드물다는 것이다. 더욱이 골드 미스터도 대부분 골드 미스보다는 나이 어린 평범한 여자를 선호하니 골드 미스에게는 영 기회가 갈 것 같지 않다.

골드 미스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은 일에 성공하는 여성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일과 결혼을 동시에 유지할 수 없는 현실 때문이다. 남성에게는 그다지 장애가 되지 않는 결혼 여부가 대부분의 직장 여성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 결혼한 직장 여성은 아이가 아프면 회의를 준비할 수 없고, 집안 일이 있으면 회사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 같은 상황에서 결혼한 남성은 아픈 아이 대신 회의 준비를, 집안 일 대신 회사 행사를 선택한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여성에게 일과 결혼은 아직도 동시에 선택할 수 없는 양 극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미혼 남성들이 맞벌이를 원한다니,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엄청난 용기나 무모함이 아닐까.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우리 사회에 비하면 여성의 삶에 대한 인식의 변화 속도는 너무나 느린 것 같다.

이경화(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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