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누군가 세상사 중에 가장 지대한 관심이 무어냐 묻는다면 단연 '문화'일게다. 이는 내가 문학이란 거대한 산언저리를 배회해서 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들이 정치를 잘하고 경제가 안정되어도 그것이 겉볼안이 됨은 인간은 배부르고 등 따신 게 행복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 이 삼두마차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면 이보다 더 질 높은 삶은 없으리라. 그럼에도 특히 정치에 유독 나의 관심이 둔감해진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즈막 거리에 나서면 큰 건물마다 도배를 하다시피 한 큼지막한 현수막을 대하곤 한다. 그 속에서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한껏 밝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들이다.4월 선거를 앞둔 출마자들의 얼굴들이 그것이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현수막 속에서 온화한 표정으로 마냥 유권자들에게 웃음을 건네고 있는 지금의 저 얼굴들이 자신들이 목적한 일을 성취하고도 저 밝은 웃음을 결코 잃지 않을까? 갑자기 궁금증이 인다. 또한 거리에서 후보자들이 자신의 약력이 인쇄된 명함을 유권자들한테 나눠주며 깍듯이 허리를 꺾는 것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지금의 저 겸손함이 향후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옛말에 '측간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 후보자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측간 갈 때 마음처럼 단 한 표가 소중할 것이다. 하지만 볼일 다보고 나면 걸핏하면 초심을 잃는 게 문제이다. 그땐 꺾었던 허릴 꼿꼿이 세우고 게다가 목에 힘까지 주기 예사 아니던가. 소위 사회 지도자층이니 품위를 위한 정도의 체면 유지는 필요하므로 그쯤이야 애교로 봐줄 만하다. 우리가 그들에게 실망하고 그들 곁을 떠나고 있는 원인은 딴 데 있다. 유권자인 우리가 진정으로 바람 하는 것은 지역 주민들 곁으로 한걸음 가까이 다가오길 절박하게 원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삶의 애환을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길 절실히 소망하며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곤 했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그런 간절한 마음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하다. 작금에 일어나는 정치인의 추태를 지켜보며 어찌 정치를 개인의 영달을 위한 방편으로 이용할까? 한심스럽기조차 하다. '억!' 하면 벌써 부정부패의 돈이다. 시시하게 몇 백도 아니고 몇 천 만원도 아닌 터졌다 하면 '억' 단위의 금액이다. 언젠가 어느 지역 군수는 자신의 잇속을 위해 내연녀까지 동원했었다. 서민들은 평생 벌어도 손에 쥘 수 없는 거액을 비자금으로 챙겨 그녀에게 맡겼다. 심지어 자신의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내연녀에게 수 억짜리 아파트까지 사주는 추악한 행태까지 서슴치 않았었다.

이런 정치인을 지켜보며 실망을 넘어서 일말의 배신감까지 느낀다. 그 군수도 자신이 그 자리에 오르기 이전에 철석같이 지역 주민들 앞에서 자신의 선거 구호로 양심 있는 정치인, 깨끗한 정치인으로 바로 설 것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런 불미스런 난장질로 인해 실상과 그 탯거리가 어긋나니 오죽하면 그 지역 주민들조차 그런 정치인으로 인해 낯이 뜨겁다 했을까. 이는 그 지역 주민에 한해서 민망함이 아니다. 요즘 우리 정치의 현주소와 맞닥뜨리는 것 같아 국민 전체의 수치라면 지나칠까?

바라옵건대 꾀바른 마음으로 재주 놀음인 양 헛구호만 외칠게 아니다. 자신이 선거 구호로 내건 말에 전적 책임을 질 줄 아는 그래서 신뢰를 목숨처럼 여기는 정치인으로 국민들 가슴에 깊이 각인되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의 정치인을 우린 바랄 뿐이다.

그래 올봄은 이래저래 희망을 지닐만한 계절이다. 새로운 정치의 훈풍도 머잖아 불어오리라. 올봄엔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정치인들 가슴마다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 올곧은 다짐이 충만하여 이 봄이 더욱 따뜻하리라.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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