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이 돌 때마다 전국이 공포에 떤다. 애지중지 기른 소와 돼지를 매몰시키면서 기른 이가 가슴을 치는 장면을 볼 때, 왜 우리는 구제역이란 바이러스에 대항하지 못하고 이렇게 무기력한 지 궁금하다. 백신을 맞추면 치료가 가능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백신보다는 매몰 방법을 선택하는 이유가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다. 더구나 매몰 후 생기는 침출수, 쇠고기나 돼지고기값 파동 등은 사회 문제를 일으킨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에이즈 바이러스, 에볼라 바이러스와 함께 레트로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레트로란 역방향으로 간다는 의미이다. 이 바이러스의 공통점은 완치할 수 있는 약의 개발이 어렵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생명체는 DNA에 저장된 유전정보를 RNA가 받아서 단백질을 만든다. 단백질은 생명체가 물질대사를 할 수 있는 기본 단위이다. DNA와 RNA의 구조는 매우 유사하지만, DNA가 훨씬 안정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RNA로부터 바로 단백질을 만들면 간단하지만, 번거로운 한 단계를 더 넣은 과정으로 생명체가 진화하였다. 태초에는 레트로바이러스들이 훨씬 많았겠지만, 수많은 돌연변이들이 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레트로바이러스는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들은 기존의 생명체 현상과 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생명체에 매우 위협적인 존재인 것이다.

레트로 바이러스는 가축의 DNA에 들어가 유전자를 변형하기 때문에 가축이 병에 걸린다. 그런데 RNA는 불안정하여 쉽게 돌연변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치료약을 만들어도 치료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백신을 맞추어도 이미 변형된 가축의 DNA 때문에 동물의 성장이 멈추고 기형이 된다. 그래서 그 가축은 사료만 축낼 뿐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구제역에 걸린 동물에게 백신을 맞추기 보다는 매몰시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구제역 파동은 경제적 이유가 환경적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사육 가치가 없는 가축을 기르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과, 매몰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적 문제가 상치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식 같은 가축을 죽일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던 이들은 이런 상황을 알고 있었을까? 만약 내 자식이었다면, 비록 백신을 맞고 부작용으로 성장을 멈추고 기형이 된다고 해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가 더 많을 것이다. 실제 장애아를 기르는 많은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더 크기 때문에 자식의 생명을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지 않는다. '워낭소리'라는 영화처럼, 가족 같은 사랑을 나누는 인간과 동물의 애틋한 이야기는 많다. 사랑하는 동물을 위해 많은 시간적, 경제적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TV동물농장과 같은 프로그램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가 과학적 지식을 조금만 더 잘 안다면, 무조건 매몰해야 한다는 주변의 주장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 보고 최종적인 결정을 선택할 수 있는 소양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구제역 청정국으로서의 자격 때문에 매몰해야 한다는 이유는, 이미 구제역이 발생한 국가에서 걱정하여야 할 문제로서의 시점은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계는 요즈음 RNA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RNA가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면, 레트로바이러스가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는 길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여러 가지 난치병의 치료약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노벨 화학상을 받고 건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초빙된 콘버그 교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고 한양대학교 석좌교수로 초빙된 파이어 교수 등이 모두 이 분야의 연구를 하였다. 그런데 최근에 생명의 기원은 매우 복잡한 구조인 RNA나 DNA가 아니라 단순하면서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TNA라는 물질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가능해질 것이다. 생명 현상에 관련된 연구에 기울이는 과학계의 노력은 앞으로 의학 뿐 아니라 경제적, 환경적 문제의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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