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盧 대통령과 관계복원 '시동'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대선후보가 그간 소원한 관계를 보였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의 관계 복원에 '시동'을 걸었다.

지난 2002년 민주당 경선에 함께 참여했던 두 사람은 참여정부 출범 후 대통령과 여당 의장 또는 통일부 장관의 관계로 짧지 않은 기간 '정치적 운명'을 같이 했지만 4월27일 회동에서 '정치적 결별'을 한 뒤 5개월여간 '냉각기'를 가졌다.

정 후보는 15일 당선자로 지명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노무현 대통령의 협력을 얻고 싶다. 감사 전화를 드리고 기회가 된다면 찾아뵐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밝힌 뒤 곧이어 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당선 신고'를 했다.

두 사람의 직접 접촉은 지난 4월말 결별회동 후 5개월여만으로, 열린우리당의 존폐와 범여권 통합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노 대통령과 갈라선 뒤 비노(非盧) 진영의 선봉으로 '변신'한 정 후보가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선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그간 '메신저'를 통해 관계 회복을 위한 양측간 사전정지 작업이 일부 진행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 후보는 16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정 후보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잘 껴안고 당내 수습을 잘 하라"는 전날 노 대통령의 '뼈있는 지적'에 대해 "실천할생각"이라고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과는 통합 문제에 대해서만 의견이 달랐다. 열린우리당 의장을 2번이나 지낸 사람이 탈당, 신당을 만드는데 앞장선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인간적으로 대단히 미안하다"며 '사과'의 뜻도 내비쳤다.

또 "어제부로 친노(親盧), 반노(反盧)의 구분법은 사라졌다"면서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10년간 민주정부를 반듯이 일궈온 분들로, 성과를 확대발전하고 못다한 한계는 뛰어넘어 제3기 민주정부를 창출해 열매를 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시간이 되면 (노 대통령을) 뵐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회동 가능성을 열어뒀다.

신당 경선 과정에서 끊임없는 '노심'(盧心) 논란이 일었을 정도로 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대선정국의 상수로서 직.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여기에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 등으로 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40∼50%대로 치솟은 만큼 정 후보로서도 '살아있는 권력'인 노 대통령과 계속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소득이 별로 없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정 후보와 노 대통령의 관계 회복은 경선과정에서의 극심한 갈등양상을 조기에 봉합하는데 돌파구가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스탠스에 따라 "정 후보와 당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친노 진영 일각의 이상기류를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후보단일화 국면에서 '노심'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도 정 후보에게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는 대목.

범여권 일부에서 친노 진영과 문국현 후보간의 물밑 교감이 진행중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돌고 있는 상황에서 노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을 통해 친노 진영까지 아우르는 범여권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해 당 정상화와 향후 단일화 등에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복안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 대통령으로선 전날 통화내용에도 녹아있듯 정 후보가 참여정부와 우리당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서운함을 단숨에 풀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여 두 사람의 '완전한 화해'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결국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을 '질서 있는 통합'으로 인정했듯, 원칙을 강조해 온 그간의 기조에 비춰볼 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당의 후보를 흔드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견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있다.

노 대통령 역시 2002년 민주당 후보 확정 이후 후단협(후보단일화협의회)으로 대표된 '후보 흔들기'의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공무원의 선거중립 의무를 감안할 때 노 대통령의 공개적 특정후보 지지는 어렵겠지만 정 후보의 성공적인 당 수습 여하에 따라 일정부분 관계 복원과 '노심'의 암묵적 지원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범여권 핵심 의원은 "노 대통령 입장에서도 정 후보와 껄끄러운 관계를 지속하는 게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노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중립을 표방하면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남북정상회담 후속 의제 등 굵직한 국정현안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후보가 나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 간접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양자간에 전략적 제휴가 모색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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