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석에서 남성들의 헤어스타일 이야기가 화제로 올랐었다. 어느 지인은 모 남성 가수의 찰랑거리는 긴 머릿결이 보기 좋다고 하였다. 하지만 왠지 미관상 눈에 거슬린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자 또 다른 지인은 예술인들은 머리를 자르면 기가 빠진다는 징크스 때문에 머리를 자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는 아마도 예술인들의 남다른 개성에 의한 발로 때문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예술인들은 남다른 영감과 직관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그 개성은 예술가들의 독특한 기질이다. 흔히 예술가 하면 특이한 외양, 자유분방한 성격을 고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찌 보면 이런 성향은 세인들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에게 충실하여 자기만족의 삶에 가치를 매기려는 의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예술인들은 유독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오죽하면 진정한 예술가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빵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헐값에 팔지 않는다는 말까지 회자 될까? 여기서 '빵'이란 물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신의 혼이 서린 작품을 한낱 돈 몇 푼에 눈멀어 자신의 영혼을 팔지 않는다는 말과도 일맥상통 하리라.

자신의 영달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작가 정신 때문에 자연 생활인으로선 낙제생일 수밖에 없다. 그래 예술인은 늘 배가 고프다고 하나보다. 물질 따윈 넘보지 않는 예술인의 예술에 대한 외골수가 부의 축적을 위한 세속적인 눈 저울질과는 담을 쌓게 하기도 한다. 오로지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향해 몰입하느라 편법, 기회주의, 패거리 추종과는 거리가 멀다. 자연 이런 예술인의 삶의 태도는 일반인들이 바라볼 땐 실생활에 걸맞지 않는 태도여서 어찌 보면 4차원 세계의 사람으로 자칫 비쳐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도 과학으론 해결 못하는 게 바로 예술이다. 인간은 돼지가 아니므로 등 따시고 배부르다고 삶이 풍요로운 것만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 정신을 윤택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술 한 점, 인간의 인생사를 표현하는 문학작품, 감동을 안겨주는 종합예술이기도 한 영화 한편 등은 영양가 높은 여느 음식 못지않게 우리의 혼을 살찌우고 마음의 탁류를 정화시키고 있잖은가.

하여 나라가 융성(隆盛) 하려면 무엇보다 문화가 발전하고 예술이 빛나야 한다. 하나 작금의 세태는 어떤가. 문학의 경우 우리 충북 문단 만 하여도 순수 예술을 지향하는 예술인들의 그 수가 상당하다. 그 많은 문학인들이 글 한편 서울 중앙문예지에 투고하여도 원고료를 챙겨주는 곳이 별반 없다. 글 한편 쓰는 일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일이다. 그런 노고를 참작하여 원고료를 챙겨주는 게 도리이건만 역시 문예지 또한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운영 되다보니 그 도리를 미처 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느 경우엔 오히려 부족한 지면을 배려해 필명을 널리 알려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정도다. 이는 작가들의 작품이 게재된 책을 구매, 혹은 구독을 권유 안하는 것만으로도 자위를 삼아야 할 정도란 이야기와 그 뜻이 같다. 그만큼 예술의 주축이 미약하고 그 밑바탕이 참으로 영세한 실정이다.

문학, 미술, 영화, 연극, 음악 등의 예술 창작엔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이 절대적이다. 그럼에도 가장 기초적인 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제도와 복지가 미미하다보니 대중들의 가슴에 길이 남을 명작을 창작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런 형국이니 위에 언급한 내용의 일들이 벌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뿐이다. 악순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학인의 경우 작품을 발표하고 싶어도 미더운 발표지면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환경에서 어찌 예술이 한껏 꽃필 수 있으랴.

뿐만 아니라 '가난한 예술인.'이란 말은 듣기에 썩 기분 좋은 꼬리표는 아니다. 이런 꼬리표가 예술인들에게 따라붙는 게 예술인들이 순수 예술, 청렴을 지향하는 뜻이라면 겸허한 자세로 그 명칭을 받아들이겠지만 그야말로 빈털터리 빈한(貧寒)을 의미하는 지칭이라면 왠지 이젠 그 명칭이 달갑지 않다. 예술인이라고 허구 헌 날 맹물만 마시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제 우리 예술인들도 인간인 이상 생활인으로서 창작 조달비가 필요하다. 훌륭한 정치란 무엇인가. 잘사는 사람보다 가난하여 음지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제 해주는 게 정치의 진정한 목적 아닌가. 사회 각 분야에 골고루 정치의 맥(脈)이 잘 돌게 하는 게 정치인의 능력 아닌가. 여태껏 예술인들은 그런 정책 구현에서 늘 제외 되어 왔었던 것 같다. 오는 4월 선거엔 예술인들에게 창작 정신을 북돋아주고 예술인들의 위상과 복지를 염두에 두는 그런 훌륭한 정치인의 등장을 손꼽아 기다려볼까 한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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