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금산분리 지켜야", 李 "이제 손봐야"..."평준화 해제 불가" vs "상향평준화 해야"

대선정국의 최대 어젠다로 부상한 경제정책 기조를 둘러싸고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후보와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후보간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정 후보와 이 후보는 이날 오후 매일경제신문사가 주최하는 세계지식포럼 기조연설에서 각자의 경제관과 차기정부의 정책기조를 발표하고 본격적인 '정책대결'을 펼쳤다. 두 후보가 직접 대면한 것은 대선후보 선출 후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성장못지 않게 분배를 고려하는 정 후보의 '차별없는 성장론'과 성장을 우선시하는 이 후보의 '신발전체제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특히 정 후보는 이 후보의 경제관을 겨냥해 "약육강식의 피도 눈물도 없는 정글 자본주의"라고몰아세웠고, 이 후보는 역으로 "경제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라며 정 후보를 향해 역공을 가했다.

두 후보가 발표한 경제정책기조의 최대 충돌지점은 재벌의 금융업 진출과 직결된 '금산분리' 정책이었다. 이 후보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완화 또는 폐지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서자 정 후보는 '특정재벌 편들기'의 소지가 있다며 존치를 주장했다.

교육정책을 놓고도 고교평준화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이 후보와 평준화 폐지는 고교입시의 부활이라고 반대하는 정 후보의 입장이 선명한 대립각을 그렸다. 두 후보의 이 같은 대립은 단순히 개별적인 정책공약 차원을 넘어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경제운용에 대한 철학, 이념성향의 현격한 차이를 이면에 깔고 있다는 점에서 대선정국 내내 뜨거운 쟁점으로 살아남을 것으로 관측된다.

◇금산분리 존치 vs 폐지 = 경제계의 최대 이슈격인 금산분리 원칙의 존폐문제를 놓고 두 후보는 첨예하게 맞붙였다. 금산분리 원칙은 금융자본과 산업자본간의 '방화벽'을 설치하는 고유의 성격과 함께 재벌정책의 향방과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정 후보는 "금산분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며 "세계적인 금융 강국인 영국과 미국이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강조하고 "금산분리 원칙의 완화는 특정 재벌을 편든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 후보는 "불과 10년 전에 재벌이 종금사를 소유, 사금고화함으로써 외환위기의 발단이 됐다"며 "다시 강자만 살아남는 정글 자본주의로 돌아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우리나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비춰 너무나 경직적인 금산분리 원칙을 갖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금산분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영미권 국가들이고 유럽연합(eu)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의 예를 보면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사전적.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나라는 별로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이제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산업자본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필요는 없고 감독을 철저히 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며 "은행의 대주주가 되면 산업자본 역시 은행에 준하는 적격성 검사와 회계감사를 받는 엄격한 감독대상이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정부' vs '큰 정부' = 먼저 이 후보는 정책의 중심을 민간과 시장에 두겠다는 입장을 천명하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정부가 다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며 "민간을 활용하면 정부의 규모를 늘리지 않고도 일을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정부부터 방만한 재정과 예산, 비효율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행정을 혁신하겠다"고 주창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시장실패 부분과 사회적 약자보호를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정 후보는 "교육혁명을 위해 고등 교육재정중 대학에 들어가는 돈이 5조원인데 이를 두 배이상 늘리겠다"며 "신기술산업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높기 때문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최소한 규제는 필요" vs "투자의욕 살려야" = 재벌정책을 놓고도 두 후보간의 예각이 두드러졌다.

정 후보는 재벌에 대해 기업가 정신의 고취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겠으나 공정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후보는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공정경쟁의 질서를 지켜내는 것이 정통시장경제"라고 강조하고 대기업 보다는 중소기업의 육성을 중시하는 '중소기업 강국론'을 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투자없이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며 투자심리의 회복을 위해 감세와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예고했다. 이 후보는 "투자활성화를 위해 감세를 추진하고 각종 불합리한 규제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혁하겠다"고 말했다.

◇평준화 폐지 vs 존속 = 고교평준화의 해제 또는 유지를 놓고 두 후보간에 선명한 대립각이 그려졌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서울 이화여고에서 열린 전국여성대회에 참석, "교육정책을 냈더니 많은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사교육비가 30조가 넘는 현 교육제도로는 더 갈 수 없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현재는 힘이 없지만힘이 생기면 (교육개혁) 그것을 하려고 한다"며 "이번 정책의 목표는 체육특기자를 원하는 수험생이 수학 등 7~14개 수능시험 과목을 다 볼 필요가 없이 자신의 특기와관련 있는 과목 4~6개만을 공부하고도 대학에 가도록 해 사교육비를 현재의 절반 정도(15조원)로 줄이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어 "학생들이 선택해서 갈 수 있는 자립형 사립고와 특성화 교육을위한 마이스터교, 그리고 기숙형 공립고교 등을 통해 고교교육을 다양화하겠다"며 "세계 유수의 사립학교들은 고액의 등록금을 받는 대신 정원의 일정비율을 저소득층의 우수한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평준화의 해제는 곧 입시지옥의 부활이며 엄청난 혼란과 사교육비의 천문학적 증가를 일으킨다"며 "이 후보가 자립형 사립고를 100개, 기숙형 공립고교 150개, 특목고 50개 등 특별한 학교를 300개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300개를 제외한 나머지 1천100개 학교에 다니는 학생과 학부모는 뭐냐"고 반문하고 "바로 삼류학교를 만드는 것이고 유치원, 초.중학교를 입시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후보는 "중.고등학생들을 죽음의 트라이앵글에서 해방시키는게 가장 급선무이고 그러려면 사교육비를 혁파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가야 한다"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2008년부터 1년을 교육혁명을 위한 사회적 대협약의 해로 선포하고 2년간 준비해 2011년을 교육혁명 원년으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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