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짝신을 끌고 어디론가 가는 꿈을 꾼다.

검정색 운동화 앞 코가 다 닳아서 엄지발가락이 툭 툭 비어져 나오는데도 엄마는 내 신발을 못 본체 외면했다. 검정 양말을 신어 보았지만 양말 또한 성한 것이 거의 없어 통감자가 삐쳐 나오듯 눈치 없이 내민 엄지발가락이 눈에 거슬렸다. 마루 밑에 기어들어가 먼지 묻고 눌린 운동화 한 짝을 꺼내 요리조리 재 보았다. 검정 운동화 발등에 이름을 그려 놓을 수 있는 흰색 네모 칸을 먹물로 문대어 짝을 맞추었다. 디자인이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언 듯 보아서는 누가 짝신을 신었는지 모를 정도로 거무튀튀한 것이 얼추 비슷했다. 감쪽같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다른 사람 곁을 지날 때는 내 감각은 온통 짝짝이 신발에 쏠려있어 누가 볼 새라 골목을 달리고 달렸다.

버선코처럼 고무신 앞코가 올라간 꼬빼기고무신은 운동화 보다 더 빨리 헤어지고 찢어졌다. 무명실로 꿰매어 보지만 삭은 고무는 무명실도 못 견뎌 이내 벌어지고는 했다. 밖에서 돌아 올 때면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겨우 발을 땅바닥에 질질 끌거나 아예 신발을 들고 맨발로 집에 돌아오고는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네 발에 가시 돋았냐'고 핀잔을 주시면서도 신발 한 켤레 값에 애면글면하는 신세를 한탄하시기도 했다. 죄 지은 듯 가시 돋친 발가락을 노려보았던 장면이 사십 여년의 세월로 차곡차곡 그 기억을 덮었는데도 불쑥 불쑥 꿈속에 무방비로 드러나 어릴 적 욕구를 희롱한다. 지나가면 잊어져야 하는 일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건만.

플라스틱 물병을 납작하게 찌그리고 끈을 매달아 신발이라고 신고 있는 아프리카 어린이의 거친 발이 눈에 밟힌다. 흙빛 발등에 눌린 플라스틱 병이 제법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하나의 지구에 나뉘어 살고 있는 각각의 생(生)은 동그라미처럼 돌고 도는 듯하다. 헤진 신발을 버리지 못하고 발가락이 다 나오도록 신고 다녔던 내 발이 21세기 인터넷을 통해 다시 그려진다.

나는 왜 아직도 신발 한 짝을 찾으려는 꿈을 꾸는가. 인도의 간디가 급히 기차에 오르려다 신발 한 짝을 떨어뜨렸는데 기차가 출발하며 가속이 붙자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얼른 한쪽 신발을 마저 벗어 떨어진 신발 쪽으로 던졌다고 한다. 친구가 의아해서 묻자 '누군가가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쪽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지 않은가' 간디의 웅숭깊은 생각에 내 유년의 해결되지 않은 욕구를 동일시시키고 싶다.


발가락에 화농이 생겼다. 볼이 좁은 새 구두를 신고 종일 서서 강의를 하였는데 발가락이 벌겋게 달아올라 화끈거렸다. 마지막 시간에는 교탁 뒤에 서서 슬그머니 구두를 벗고 키를 맞추느라 까치발로 버텼다. 삼일 쯤 지나니 통증으로 입이 딱딱 벌어졌다. 구두 속에 갇혀 있는 발이 아우성을 쳤다. 무릎이라도 꿇릴 것 같은 기세다. 짝짝이로 아픈 발에만 슬리퍼를 신었다. 걸을 때마다 높낮이가 달라서 기우뚱 거린다. 밖에 나서는 일이 두려웠다. 정장을 입었으니 운동화를 신을 수도 없고 슬리퍼를 신을 수도 없어, 그냥 아픈 발을 낮은 구두 속에 감추기로 했다. 이런 때 한쪽 발이 맨발이었으면 좋겠다. 맨발이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짝짝이로 슬리퍼를 신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제는 말해야겠다. 그리하여 짝신을 신고 다니느라 부끄러웠던 어린 발을 위로해주고, 새하얀 운동화를 신고 날아갈 듯 뛰는 꿈을 꾸게 하고 싶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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