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의 태동 이래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으로서 갈구하는 최대의 욕망이 아닐까 싶다. 오랜 기간 동안 자연의 섭리와 질서에 순응하며 생명력을 유지해 온 인간은 생물학적 무게중심을 뇌에 맞춰 신체의 리듬을 유지해 왔다.

낮과 밤의 구별은 수면과 활동의 리듬을 익히게 하고, 호흡과 심장, 뇌는 분 단위 또는 초 단위의 단계로 영속적인 적응과 리듬을 타면서 생명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불행히도 자연의 섭리와 질서를 거부하면 신체의 리듬은 깨어지고 생을 마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권세 있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더 더욱 그 정도가 심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만들어 죽은 자의 환생을 믿었고, 장수를 염원했던 그리스의 왕은 꽃다운 나이의 처녀들을 무참하게 살생해 왕의 체내에 수혈하다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조금만 더 나를 살게 해 준다면 백만금을 주겠다"던 엘리자베스 여왕도, 진시황제 또한 아방궁을 세워 놓고 젊은 미녀들과 환락에 빠져 불로불사약(不老不死藥)을 찾으라 명했으나 결국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이처럼 영원한 쾌락을 위해 갖가지 비방을 찾아 노력했던 사람들은 결국 대자연의 섭리를 터득하지 못해 버림을 받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하루하루가 생존의 투쟁인 사회생활에서 병원신세를 지기 전까지는 건강의 고마움을 까마득히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막상 병실에 누워 돌이켜 보면 이미 때가 늦었거나 방법을 그르쳐 건강을 해치는가 하면 지나친 욕심으로 수명을 단축시키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래서 로마의 웅변가 세네카는 "인간은 자연사로 죽는 것이 아니라 자살하는 것이다"라고 갈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모든 동식물들은 정해진 시간의 한계가 있어 거북이나 고래는 300년을 살고, 코끼리는 200년을 산다고 한다. 인도의 보리수나무는 2500년 전후, 삼나무는 1600년, 소나무와 참나무는 1000년 정도를 생존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우리 인간들은 과연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인간의 생명에도 한계가 있어 늙으면 세포가 노쇠하고 파괴되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나 인간 최대의 욕망이자 미덕을 뒤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알려진 장수지역을 연구 조사한 결과의 공통점은 등뼈가 곧고 다리가 튼튼하며, 규칙적인 섭생과 운동, 청결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터전 등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간단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일상생활의 절제, 과음과 과식을 피하고 규칙적인 운동만으로도 누구나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의학적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생을 마감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그것은 곧 연령의 문제가 아니라 부주의한 건강관리로 신체의 어느 부분이 너무 빨리 고장을 일으킨 탓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건강한 삶의 비결은 신체라는 기계의 고장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며, 혹시 고장났다 하더라도 다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재활의 과정 또한 무시해선 안된다. 오죽하면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인조병, 습관병, 성격병이라고 하는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는 노예가 되었을까?

자연이 인간에게 준 커다란 선물을 알맞고 즐겁게 사용할 때 생명이 되고 빛이 되는만큼 잘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삶의 지혜가 아닐까 싶다.



/김종탁 주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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