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며 우린 얼마나 남의 입장을 헤아리고 있나. 이는 배려 아닌가.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나아닌 남을 배려하는 일에 점점 인색해지고 있다. 더구나 도덕 불감증 시대에 살고 있어서인지 자신의 언행이 타인에게 끼칠 해악에 대해서도 무감각하다. 자신이 행한 언행에 대하여 늘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가하는 해코지쯤은 얼마든지 자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던가.

언젠가 재래시장에서 상인과 손님 간에 시비가 이는 것을 목격했었다. 어느 여인이 시장 노점에서 물건을 사기 전 값부터 내는 것을 곁에서 보았었다. 그런데 노점 상인은 물건 값을 받지 않았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 이 때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 옆에 또 다른 상인도 그녀가 물건 값을 치루는 것을 곁에서 보고도 못 봤다고 잡아떼며 그 상인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여인은 억울한 듯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한다. 그것을 지켜 보다 못해나는 옆에서 그녀가 오만 원 권 지폐 내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그러자 그 상인은 이번엔 화살을 내게 돌려 노발대발 목울대에 핏대까지 올리며 자신은 그 돈 안 받았다고 딱 잡아뗀다. 그러자 함께 물건을 흥정하던 어느 노신사 한분이 자신도 그 여인이 돈을 치루는 것을 옆에서 보았다고 말을 거들자 그제야 상인은 기가 한풀 꺾인 듯 거스름돈을 마지못해 여인에게 건네준다. 그날 그 광경을 지켜보며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라는 옛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여인이 물건 값 내는 것을 곁에서 분명 두 눈으로 보고도 못 봤다고 거짓을 행하는 또 다른 상인의 언행이 더 괘씸했다. 거짓 증언을 하였잖은가. 진실 앞에 양심을 속이고 불의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 위증을 했잖은가. 아무리 거짓의 힘이 세다고 하여도 진실은 덮을 수 없다. 혼잡한 시장 안에서 두 노점상인들은 진실을 아무도 모르리라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 그리고 노신사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노신사, 그리고 나의 증언으로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여인이 우리 둘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 요즘 세상엔 눈앞에서 사람이 다쳐도 못 본체 하고 지나치기 일쑤인데 이렇듯 두 분의 말씀으로 인해 제 억울함이 벗겨져 너무나 고맙습니다."라는 말 앞에 다시금 두 노점상인의 언행을 곱씹어 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아무리 돈에 눈이 멀었기로서니 또한 인간관계가 소중하기로서니 어찌 노점상 두 사람은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을 일삼는가. 남의 눈은 쉽사리 가릴 수 있어도 유일한 자신의 양심만은 속일 수 없잖은가. 그날 비록 남의 일이지만 반면교사로 삼을 만 한 일이 되고도 남음 있었다. 나또한 사소한 이익을 앞에 놓고 혹은 사사로운 인연에 얽혀 양심을 속인 게 없었는지 내 마음의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햇살이 유난히 눈부신 5월의 어느 날 일이었다.



/김혜식 하정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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