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형은 41년 전 월남에서 전사했다. 현충일을 맞아 형이 잠들어 있는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할 때면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다.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편안하게 세상의 열락을 누리고 살 자격이 있는 것일까.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도 다하지 못하고 고교를 중퇴한 형이 스물네 살 꽃 같은 나이에 전쟁터에서 세상을 떠난 생각을 하면 죄송하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땅의 평화와 즐거움이 형을 비롯해 목숨 바쳐 이 나라를 지켜낸 이들의 희생 위에 서 있는 것을 생각할 때면, 나만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는 게 미안하다. 그리고 그분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지금 살려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눈물나게 고맙다.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으로 오늘 제가 기쁨을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6월이다. 호국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보호해야 한다는 호국(護國), 공훈에 보답해 한다는 보훈(報勳). 정부는 올해 여러 미래지향적 행사를 통해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호국정신을 함양하여, 나라사랑과 국민통합에 기여하기로 했단다. 현충일 행사에 경제ㆍ문화예술ㆍ종교, 체육계 등 각계인사의 참여를 확대하고, 조기게양ㆍ묵념참여 등 엄숙한 추모행사에 전 국민이 참여하도록 할 계획이다. 5,000여명이 참석하는 전쟁기념관의 6 · 25 기념식, 3,000여명이 참석하는 해군 2함대의 연평해전 10주년 행사, 전쟁기념관과 서울광장을 잇는 호국퍼레이드 및 나라사랑 콘서트, 6ㆍ25상기 안보마라톤 대회 등 특별한 행사를 통해 전후 세대에게는 6ㆍ25전쟁과 그 이후의 도발을 상기시키고 6·25사변과 그 이후 희생ㆍ헌신한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전달 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순국선열'이니 '호국보훈' 이니 하는 말이 나오면 무슨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소리로 치부하거나, 현충일을 또 다른 하나의 공휴일로만 생각하고, 6 · 25사변은 먼 이웃나라의 남북전쟁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늘어가는 현실에서, 정부의 이와 같은 계획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언론 등에서는 젊은 세대의 안보관에 문제가 많다든가, 6 · 25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걱정이다 등의 일회성 보도와 함께 안보교육의 취약성 및 대책 필요성을 떠들다가 슬그머니 사그라져 버리고 말았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는 그런 전철을 밟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의 이번 대규모 기념행사 계획이 일과성 행사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누가 정권을 잡든,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살아 누리고 있는 나머지 모든 국민의 뇌리 속에 심겨지도록 하고, 희생자 가족들이 자부심과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각종의 조치들을 지속적이고 가시적으로 시행해 나가야 한다.

우리나라 오천년 역사 위에 어렵지 않았던 시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많은 고비와 고비를 넘기며 여기까지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고비를 넘기게 해준 것이 바로 순국선열들의 희생이다. 나라 위해 목숨을 잃은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의 우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그 분들을 기억하고 기리지 않는다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아무도 나라를 위해 희생하거나 목숨 바치지 않을 것이다. 보훈(報勳)은 거창한 행사와 구호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순국선열과 국가유공자, 그 유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며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주위의 보훈가족에게 따뜻한 위로와 감사의 말 한마디 건네 보자.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또한, 자녀들과 함께 국화 한 송이 손에 들고 국립묘지나 가까운 현충탑을 찾아보자. 순국선열들의 희생이 마음에 새겨질 것이다.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 그 어려움을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은 바로 이런 작은 실천에서 비롯될 것이다.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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