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진열장에서 발가 벗겨져 부하 직원과 업무 민원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가를 받는 기분이다."

천안시청의 한 사무관이 최근 천안시가 5급(사무관) 이상 간무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시가 이메일 등을 통해 부하 직원과 업무 관련 민간인들한테까지 청렴성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자 불쾌감을 표시했다.

시는 이달 한 달동안 103명의 5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외부 조사기관에 의뢰해 지난 1년동안 처리한 일에 대해 간부 공무원 1인당, 부하 직원과 외부인 25명을 평가자로 하는 청렴도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 결과를 외부 공표는 하지 않고 기관장과 당사자에게만 통보한다고 하지만 비밀은 없는 세상에서 결과가 나쁜 당사자의 심적 고통과 모멸감은 불을 보 듯하다.

물론, 시가 공직사회의 꽃이라는 사무관과 그 이상 간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청렴성 제고를 위해 이렇게까지 나오게 한 단초를 제공한 당사자는 간부 공무원들이다.


- 부패 척결 원년의 해


공직비리가 계속되자 천안시는 2008년 3월 ‘부패척결 공직기강 확립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같은 달 21일 ‘천안시 공무원 등 부조리신고 포상금지급조례’까지 제정했다.

그 해 9월 열린 천안시의회 124회 임시회에서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연 2회 반 부패교육과 감사부서 독립성 확보를 위해 부시장 직속으로 하는 조직개편과 민간업자들에게 부패방지를 위한 협조문 발송을 했을 정도다.그럼에도불구하고, 지난 해 7월27일 성무용 시장은 시청 개청 이래 최다, 초유의 4억 8000만 원대의 뇌물사건이 터지면서 결국 시의회에서 대 시민 사과를 하게 됐다.

감사 부서는 올해 시민 청렴 만족도를 높인다며 5급 이상 간부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업무 관련 민원인과 하위직 공무원들을 응답자로 하는 청렴성 평가를 실시한다고 대책을 내놨다.

그리고 현재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간부 공무원들이라고 할 말이 없겠는가? 시는 이미 외부 감사관제를 도입해 현미경 같은 감사를 운영할 근거를 마련했고, 부시장 직속 라인으로 조직개편까지 단행해 힘을 실어줬다.

업무별·시기별로 시 산하 21개 기관을 대상으로 감사 사전 예고제를 운영하고 있고, 일상 경비(본청), 법인카드, 민원 처리 실태, 대형 공사장과 관련해 세밀한 감사를 벌이고 있고, 업무 집행 전 적법·타당성 점검과 심사까지 실시해 부서장들의 운신의 폭은 극도로 좁아졌다.공직자 재산 등록으로 부의 축적과 흐름이 다 까발려졌고, 비리나 의혹이 있을 경우 인터넷은 물론 각종 제보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 자체 빼고 99일간 감사


지난 한 해 자체 감사는 차치하고, 국·도비사업의 경우 해당 기관에서 수시 및 정시로 52회에 걸쳐 99일간 감사를 받았고, 비리의 단초가 있을 경우 수사기관에서 나서 벌을 주고 있으며, 시의회까지 감시 기능을 가동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 술 더 떠 부하직원과 외부인들에게 청렴도까지 조사받아야하는 상황에 자부심과 자존심은 허물어지고, 자괴감만 남을 수밖에 없다.

조사결과 순위까지 나올 것은 뻔하고, 이런 분야 조사에서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응답자와의 친분이나 평소 인간관계로 평가가 엇갈리는 결과가 나올 수 있어,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경우 당사자들로부터 그에 대한 동의를 얻기는 쉽지 않다.

조직 내에서는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봐야하고, 비슷한 직급 동료 간에는 사업 및 업무와 관련해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하며, 명퇴로 조직을 일찍 떠나자니 공직 30여년에 사회에 적응하기도 힘들고, 참으로 힘든 ‘끼인세대’에 사는 간부공무원들.

발가벗겨져 평가를 받는 초유의 수모(?)를 당하더라도 연금이라도 받으려면 퇴임 때까지 부하 직원과 민원들로부터 몸조심하고 몸을 사리는 것이 최선일 듯 싶다.



/박상수 천안주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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