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위, 중앙정보부 직접 개입 확인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김대중 납치사건'은 유신 시대에 정보기관이 개입한 대표적인 정치공작사건으로 그동안 진상이 은폐된 채 의혹에 휩싸여 사회적 논란을 야기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가 24일 내놓은 조사결과는 이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진상 조사결과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수 있다.

▲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24일 지난 73년 8월 발생했던 김대중 납치사건 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지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최소한 묵시적 승인은 있었다는 판단을 했다. 사진은 김대중씨가 지난 73년 8월 14일 동교동자택에서 납치사건에 대한 회견을 하는 장면.

진실위는 특히 이 사건이 정부 당국, 즉 중앙정보부가 직접 개입한 사건이라고 확인함으로써 한.일간 외교적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그동안 이 사건에 중정이 개입했다는 지적과 해석은 많았지만 정식으로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진실위는 이 사건에 대한 의혹사항을 ▲중앙정보부에 의한 납치여부 ▲최고위 지시자 ▲공작목표 ▲정부의 조직적 진상은폐 여부 등 4개 분야로 나눠 조사를 진행했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개입 여부였다. 박 대통령은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90여만 표의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3선에 성공했으나 이후 두사람은 정적(政敵)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됐고 박 대통령은 김대중씨의 정치활동을 집중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진실위는 보고서에서 "대선을 통해 김대중의 정치적 위상이 급상승하자 박대통령은 그의 장기집권에 최대 걸림돌로 여겨 집중적인 견제를 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그때부터 중정이 김대중에 대해 본격적으로 집중 동향 내사를 진행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납치사건이 발생하자 당연히 사건 배후에 관심이 쏠렸고 그동안 '이후락 중정부장 지시설'과 '박정희 대통령 지시설'로 주장이 엇갈려왔다.

'중정부장 지시설'은 당시 이후락 부장이 지난 73년 3월 '윤필용 사건'에 연루된 이후 박 대통령의 불신을 받고 있던 중 김대중의 반유신 활동과 관련한 중정의 대처방안에 대해 강한 질책을 받자 박 대통령에 대한 신뢰회복의 최후수단으로 납치사건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윤필용 사건이란 윤필용 당시 수경사령관(현 수방사령관)이 술자리에서 '박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후계자로 이후락을 거론했다'는 이유로 처벌된 사건이다.

반면 '대통령 지시설'은 국가적으로 중대한 공작사항이 이후락 부장의 독단적인결정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유신체제를 맹렬히 비난하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박 대통령이 이후락 부장에게 사전 지시를 해 실행됐다는 주장에 근거하고 있다.

진실위는 이러한 주장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국정원 보존자료 1만2천833쪽과 김대중도서관 등 타 기관 보유자료 2천651쪽, 그리고 납치사건에 관여한 전직 중정요원 11명과 용금호 선원 4명을 포함해 모두 18명에 대한 면담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객관적 증거를 통해 이후락 부장이 중정 공작부서에 납치공작을 추진토록 지시했다는 것은 명확하게 확인됐으나 박 대통령이 사전에 납치지시를 했는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사건의 핵심자료인 'kt공작계획서'가 남아 있지 않아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진실위는 여러 정황과 관련자 증언 등을 종합 분석해 볼때 "박 대통령의 직접지시 가능성과 더불어 최소한 묵시적 승인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증거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정황 등을 근거로 추론한 판단인 셈이다.

아울러 관련자들의 증언도 제시했다. 최영근 전의원이 1980년 초 이후락 부장으로부터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어쩔 수 없이 하게 됐다"는 의미의 말을 직접 들었다는 것과 이철희 정보차장보가 이 부장에게 지시를 받을 당시 반대의사를 피력하자 "나는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라고 했다는 전문(傳聞)증언이 바로 그것이다.

또 납치공작이 한장 진행중이던 1973년 7월 27일 김대중의 반유신 활동사항을 종합한 내용이 박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됐을 때 공작 진행과 관련된 상황도 포함됐을 개연성이 높으며 사건 발생후 관련자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보호했고 당시 김종필 총리를 파견해 일본과의 마찰을 수습토록 한 점 등도 근거로 꼽혔다.

그러나 진실위는 박 대통령의 지시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자료는 발견하지 못했다.

핵심 관련자들의 'kt공작계획서' 작성 증언을 청취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전문내용도 확보했으나 정작 문서는 찾지 못한 것이다. 사건 발생 후 문서가 파기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진실위는 설명했다.

진실위는 또 이 사건이 당시 이후락 중정부장의 지시에 의해 실행됐다는 사실과사건 발생 이후 중정이 조직적으로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는 실상도 명백히 확인했다고 밝힘으로써 한일관계에 또다른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한일 양국 정부의 납치사건 처리과정을 검토해 보면 양국 정부 모두 사건의 진상은폐에 관여한 잘못이 있다고 진실위는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이러한 보고서 내용과 관련, "한국 당국에 의한 일본 국내에서의 공권력 행사로 일본으로서 매우 유감"이라면서 한국 정부의 사죄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진상 규명이 되지못한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는 보고서의 지적에는 "책임이 일본 측에 있다는 주장을 만일 한국 정부가 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의 사과와재발 방지를 요구한 데 따른 청와대 입장을 묻는 질문에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불행한 일이고 유감스러운 일"이라면서 "(조사)결과는 각 기관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발표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 청와대가 논평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진실위는 위원회 의견을 통해 "조사결과 공개를 통해 '전직 중정직원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납치과정 중 겪었을 고초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전달하면서 이로써 진정한 용서와 함께 화해의 장이 마련돼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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