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 대학 교수 헤리겔이 어느 선승에게서 궁술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백발백중의 기술을 익히게 되었다. 헤리겔이 스승에게 말했다. “이제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이제 돌아가도 되겠지요?” 스승이 말했다. “그렇다. 돌아가도 좋다. 그러나 그대는 내 기술의 ABC도 배우지 못했다.” 헤리겔이 말했다. “ABC 라니요? 이제 제 기술은 백퍼센트 완벽합니다.” 스승이 말했다. “난 지금 명중률을 말하고 있는게 아니다. 과녁을 맞추는 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

이제 진짜 궁술을 배우도록 하라.” 헤리겔은 스승과 함께 시도해 보았지만 좀체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런 어느 날 그가 자포 자기한 상태로 스승에게 말했다. “언제나 성공할 수는 없겠지요. 전 스승님의 ‘무’라고 일컫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전혀 무의미한 것입니다. 제가 화살을 쏘지 않는데 어떻게 화살이 스스로 날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건 불가능 합니다.” 스승이 말했다. “그러면 그대, 가도 좋다.” 헤리겔이 말했다. “제게 인정서를 주시는 겁니까?” 스승이 말했다. “그럴 수는 없다. 그대는 아무것도 배운게 없다. 그대가 배운 것이란 다른 곳에 가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헤리겔은 비행기편을 예약해 놓고 떠날 준비를 했다. 그는 하여튼 모든 것을 잊으려 했다. 그는 3년 동안이나 거기에 있었다. 그것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헤리겔은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스승에게로 갔다. 스승은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기다렸다. 헤리겔은 스승이 다른 제자들을 가르치는 동안 의자에 앉아서 처음으로 긴장을 풀고 아무런 초조함이 없이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한 순간 그는 참으로 보았다. 그는 스승이 전혀 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스승은 활을 손에 잡고 서서히 끌어 당겼으나 이 화살은 스스로 쏘아졌던 것이다. 헤리겔은 바로 이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통찰이었다. 헤리겔은 자기가 왜 실패했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3년 동안 그는 스승이 활 쏘는 모습을 수 없이 보았었다. 그는 스승에게 달려가 그의 발에 입을 맞추고 아무 말 없이 활을 들어 쏘았다. 그러자 스승이 그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되었다. 그대는 이제 더 기다릴 필요가 없다. 돌아가도 좋다. 그대는 이제 알았고 경험했다.”


궁수가 활을 들고 과녁을 겨눌 때 거기엔 세 가지가 있다. 궁수는 근본이고 기본이며 근거이고 중심이다. 다음에 궁수로부터 과녁을 향해 날아가는 화살이 있다. 그리고 다음엔 멀리 떨어져 있는 과녁이다. 그 과녁을 명중시켰을 때 그대는 먼 것을 만진 것이다. 그러나 그 원천은? 그대는 과녁을 명중시키면서 기계적으로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원천으로부터,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화살이 날아가는지 그대는 아는가? 화살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누가 화살을 움직이는가?


그대는 그것을 모른다. 그대는 궁수를 모른다. 그대의 솜씨가 백발백중이라면 그것은 과녁에 관한 것이다. 그대 자신은 어떤가? 궁수는 대체 무엇인가? 궁수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궁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대, 그대의 화살이 과녁을 향할 때, 밖으로 날아가려 할 때, 곧 바로 되돌려 안으로 향하게 하라.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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