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여름 이맘때 쯤, 학생 3명과 행정안전부에서 주최하는 IT봉사활동을 위해 중국 연변자치주의 주도인 연길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연길에 있는 연변과기대였는데 교육대상은 중국연변장애인 경영인협회 회원들로 주로 연길에서 중·소규모의 사업을 하시는 가벼운 신체적 장애가 있는 중국동포 분들이었다. 교육생들 중에 여행업을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하루는 우리 팀원들이 더운 여름에 타국에 와서 고생이 많다고 하시며 저녁을 사시겠다고 시내 식당으로 팀원 모두를 초대하셔서 저녁을 대접 받았다. 저녁을 먹고 가볍게 술 한 잔을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속에 있던 말들을 풀어 놓으셨다.

그 분은 당시 40대 중반쯤의 나이였던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결혼을 못했다면서 억울함을 토로하시기 시작하셨다. 여행업으로 어느 정도 돈도 모아 승용차도 타고 다니는 등 경제력도 갖추신 듯했다. 결혼을 못한 이유는 연변 자치주에 결혼할 조선족 여자가 없다는 것이다. 연변자치주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조선족 여자들이 북경이나 상해등 대도시로 나가 한국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여행가이드나 서비스업 등에 종사하며 돈을 벌기 위해 떠났고 특히 인력 수요가 많은 한국으로 많이 나가 있다고 했다. 당시 한국에서 2년 정도 식당일을 해서 돈을 모아 연길에 돌아오면 시내에서 번듯한 식당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결혼을 못하게 된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이 잘 살아서 대부분의 조선족 중국동포 여자들을 데려가 버렸기 때문이라고 서운해 하시는 듯했다.


요즘 국내에서 조선족 중국동포 아주머니들을 자주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도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아주머니들 중 조선족 중국동포 분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예전에 서울에서 구로역 근처에 있는 병원에 입원하신 지인의 병문안을 가기위해 대림역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는데 대림역 근처에 왜 이렇게 조선족 중국동포들이 많으냐고 물어 보았더니 구로구 가리봉동과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는 국내 최대의 조선족 타운이란다.

가리봉동에서 시작된 조선족 타운은 영등포구 대림동을 거쳐 관악구 봉천동까지 확대되고 있고 이곳에 정착한 이유는 교통이 편리하고 임대료가 저렴한 노후 연립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 동포들이 한국생활 5년 정도를 하게 되면 1000만 원대 보증금과 월세 30만 원대가 되는 두 칸짜리 방을 얻어 흩어졌던 식구가 한데 모여 사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환경의 방을 구하려다보니 쪽방만 많이 있는 가리봉 지역에서는 구할 수 없어 지금은 신대방, 신림, 낙성대, 구의, 건대역 등 교통이 좋은 강남지역이나 강북의 지하철 역세권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한국내의 조선족 중국동포의 증가와 중국내 해안 대도시로의 이동은 조선족 자치주내의 심각한 인구 감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조선족 인구가 감소하면서 연변에서 조선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현재로 35.46%에 그치고 있다. 조선족 자치주 건립 초기였던 1952년 조사 당시 62.01%를 차지했던 것에 비해 절반가량 감소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30%를 밑돌게 되면 자치주 지정이 해제될 수 있기 때문에 조선족 감소세가 지금처럼 계속되면 머지않아 연변이 조선족 자치주 지위를 잃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필자가 직접 들었던 더 충격적인 사실은 당시 2008년은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해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는지 모르겠으나 적지 않은 조선족 동포 분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조선족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자랑스러운 중국인으로 살아 갈 때가 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과도 연계되어 있어 중국당국의 목적이 점차 현실화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섬뜩케 했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고대에는 부여와 북옥저,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다. 지금의 둔화 시에 있던 동모산은 발해 건국의 출발지였다. 이 지역은 발해의 중심지였던 만큼 현재도 발해 관련 유적들이 많은 곳이다. 국가적으로도 연변조선족자치주 존속문제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할 문제인 듯싶다.



/심완보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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