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 가정에서나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는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유태인의 가정에서 어린이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도 동물에 비유 한 것이 많다. 그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영리하기로 이름난 여우 한 마리가 바닷가에 갔다. 여우는 동물 중에서 머리가 좋다는 인정을 받고 있다. 그 여우는 바다 속의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물고기 여러분 바다 속은 위험하니까 뭍에 올라와서 우리와 함께 삽시다. 어부들이 그물을 쳐서 여러분을 잡으려고 한답니다. 또 큰 고기들이 여러분을 잡아먹을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육지에 올라오면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물고기 대표들은 모여서 회의를 하였다. 갑론을박, 좀처럼 회의는 끝나지 않는다. 여우는 머리가 영리하니까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주장에서부터 바다 속에 사는 것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아오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대립된다. 고기들은 오랜 숙의를 거듭한 끝에 여우의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하였다. 물고기 대표는 물위로 얼굴을 내밀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우님, 우리를 생각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우리는 물속에 사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저녁 식탁에서 자녀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 아버지는 계속해서 이런 질문을 한다. “물고기가 물에서 나오면 어떻게 되지?” 어린이들은 금방 알아듣는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오면 말라죽게 된다고 대답한다. “바로 그거야.” 아버지의 교훈은 계속된다. “유태인은 유태인으로 살아야지 아무리 어떤 유혹이 있더라도 유태인임을 저버릴 수는 없는 거다.” 어린이의 마음속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무엇인가 가슴을 울려주는 감동과 각성이 있게 된다. 무서운 교훈이다. 이렇게 해서 유태인은 유태인으로서의 신분과 정신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어린 마음속에 심어준다. 물고기가 육지에 올라가면 바다 속의 위험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마침내는 여우의 간계에 빠져 잡아먹힌다고 생각하였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속담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하는 것이 있다. 어느 면 유태인의 “물고기 교훈”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나는 민족의 정체감을 강조하는 것임에 반하여 다른 하나는 계층적 신분과 가문을 강조하는 것이다. 너는 상놈으로 태어났으니 혹은 천한 종의 몸이니 그 신분을 벗어나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이 이조시대의 규범이었다. 이 가치관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조상 대대로의 가난한 삶을 탈출하여 새로운 웅비(雄飛)를 위해 집을 나서려는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자애스런 어머니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해.”라고 말하는 모습을 요즘 TV 연속극 화면에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가정교육에서는 가문이나 신분의 정체감을 강조했을 뿐 민족의 정체감이나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비근한 예로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의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요즘은 해외이민의 수도 급증하여 보도에 의하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만도 근 15만의 동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10여만의 동포가 북송되었지만 아직 60여만의 동포가 있다. 이들 해외 동포가 어느 정도 한국인 의식을 몸에 담고 있는 것일까? 아니 해외동포의 2세, 3세에게 어느 정도 한국인 의식을 심어주고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줄 만한 근거는 없다. 해외동포에 대한 광범한 의식구조 조사를 단 한 번도 한 일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다만 단편적인 자료나 좁은 범위이지만 해외동포의 접촉에서 받은 인상에 의존하여 판단할 수밖에 없다. 민족의식에 관한 한 유태인과 우리 사이에는 너무나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비단 재일동포의 경우에서만이 아닌 성싶다. 나라 없는 설움, 민족과 우리고유의 문화가 깡그리 말살당할 뻔했던 치욕의 역사가 불과 반세기도 되지 않은 어제의 일이련만, 그 쓰라린 경험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민족의 긍지와 한국인의 의식을 우리들 후세에게 심어주는 일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점 우리는 유태인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다.

일본에서 재일동포가 한국 사람임을 떳떳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분개해진다. 가정에서나 밖에서나 한국말을 쓰는 일이 없고 -하기야 모르니 쓸 수도 없지만- 민족의 역사를 배운 일도 없고, 한민족의 문화적 긍지가 무엇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재일동포 2세에게 민족의식이나 한국인으로서의 자아의식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 일는지 모른다. 유태 4천년의 역사와 지혜를 강조하는 유태의 가정교육에서 민족의 얼을 심어주기 위한 교육의 산 표본을 발견하게 된다.



/윤한솔 홍익불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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