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황당한 일을 당했다. 어떤 신문의 사설에 종전 내가 '충청광장'에 썼던 칼럼의 서너 부분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베껴 써진 것을 확인한 것이다. 사실 내 글이 다른 이의 글에 인용 됐다면 기분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다. 종전 몇몇 학술지에서 내가 과거에 쓴 논문의 일부가 다른 학자들에 의해 인용된 것을 발견할 때나 또는 인터넷에서 내 글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인용된 것을 확인할 때는 보람을 느꼈다.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내 노작(勞作)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고 그것을 자신의 논문이나 글에서 인용해 여러 사람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글에서는 당연히글의 출처를 정확하게 인용하고 있어서 내 것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소위 특정 언론을 표방하는 신문에서 내 글을 전혀 인용부호나 출처도 밝히지 않고 마치 그 신문의 사설 작성자의 경험이나 생각인 양 그대로 베껴 쓴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 총선 때 이 지역을 비롯해 전국 몇 개 지역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들의 학위논문에 대한 표절문제가 논란이 되어 떠들썩했고, 또 최근 청원군에서 공모한 미술작품에 대한 표절시비가 매우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나까지 그런 꼴을 당하니 매우 언짢다. 내가 쓴 글의 구절이 공감 가서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되었다는 것이 나쁠 리 없지만, 한 마디 상의나 인용부호도 없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소위 '사설'이라는 데서 그대로 베껴 쓴 사람의 양심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잠깐이지만 참기 어려운 분노를 느꼈다. 간혹 표절시비로 고소와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쓸 때 머리에서 술술 나와서 되는 것이 아님을 써본 사람은 다 안다. 많은 시간 구상하고, 자료 수집하고, 일단 써놓은 뒤 여러 차례 고쳐 쓰고, 때로는 다른 이에게 먼저 읽혀 보고 나서 세상에 내보낸다. 그런 것을 가지고 토씨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써버리는 사람은 비난받고 벌 받아 마땅하다. 유형의 재산을 훔치는 것만이 절도가 아니다. 무형의 지적 재산을 훔치는 것도 엄연한 절도다. 오히려 더 나쁜 절도다. 그래서 저작권법을 비롯한 각종의 지적재산권법에서 그것을 처벌하고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고 있지 않는가.

나도 가끔 다른 이의 글이나 생각에 공감해서 인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대로 베껴 쓰지는 않는다. 문구를 이리저리 바꾸어서 사용한다. 주어를 목적어로 바꾼다든가, 능동형 문장을 수동형 문장으로 바꾸고 용어를 바꾸는 등, 전혀 다른 문장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인용표시를 하고 출처를 밝힌다. 이는 이십여 년 전 미국에서 공부할 때 수강한 글쓰기 강좌를 통해 얻은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표절을 매우 경계하는 지도교수의 가르침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내가 제출한 과제물 중 다른 저서와 논문을 거의 그대로 베껴 쓴 부분을 정확하게 지적하며 '표절(plagiarism)' 표시를 하여 주의를 촉구 했다. 그 이후 작은 글에서부터 박사학위 논문에 이르기까지 이 점에 대해서는 극히 조심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창작은 모방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모방은 모방일 뿐, 타인의 정신적 · 지적 생산물인 저작물을 인용부호도 없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세상에 내놓는 짓은 참으로 비열한 짓이다. 내 글을 베껴 쓴 이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자세한 얘기를 하기도 전에, 부분적으로 좀 쓴 걸 가지고 뭘 그러냐는 투여서 바로 전화를 끊었다. 저작권법 위반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까 고려중이다. 내가 잘나서도 아니고, 당장 무엇을 얻고자 함도 아니다. 적어도 글 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살면서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세태, 다른 이의 논문을 거의 그대로 베끼거나 번역해서 학위를 받았다고 비판 받으면서도 지도자연 하는 행태를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를 하는 이들이 가슴 펴고 사는 사회는 병든 사회요, 퇴보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유재풍 법무법인 청주로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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