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학시절 경험한 일이다. 대학 주변 한적한 동리에서 내가 살던 집은 한 채를 대칭으로 나눠 벽을 맞대고 두 가구가 거주하는 단층 건물이었다. 당시는 이 마을에도 외국인 유학생들이 한두 가구 들어와 살기 시작하던 1970년대 말이었다.

어느 날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사복차림의 순경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척 당황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이웃사람들이 나를 고발했는지 우려하면서….

'언제 이사를 왔느냐, 사는 데 불편한 점은 없느냐'는 등 통상적인 이야기를 물어보는데 표정으로 봐서 이미 내 신상을 다 파악하고 온 듯했다. 그러다 불쑥 바로 이웃해서 살고 있는 남자가 도둑 전과가 있는 사람이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평소 문단속을 잘하고 다니고 현금은 아예 은행이나 우체국에 저축을 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 친절하게 충고도 했다. 그리고 '혹시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연락해 달라'며 명함을 건네주는 것이 아닌가.

그날 이후 나는 괜히 불안하고 이웃집 부부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찾아왔던 순경은 모든 동리사람들을 손금 들여다 보듯 했으니 무언가 나름대로 판단이 있었던 것이라 생각됐다. 그 부부는 평소 어두운 표정에 친절하지도 않고, 인사를 해도 애써 외면하며 억지로 쓴웃음을 짓는 등 왠지 이상했었는데 그제서야 좀 이해가 됐다. 유학생 형편에 별로 탐낼만한 세간도 없건만 학교에 가 있으면 괜히 불안했고, 집에 오면 문고리가 잠겼는지 여부를 확인하게 되고, 밤이면 혹시 이웃집 남자가 몰래 잠입하지 않을까 불안해 뒤척이면서 한동안 심리적으로 아주 불편한 한 지붕 아래 두 가구 동거생활(?)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다가 그들의 존재를 별로 의식하지 않게 된 어느 날 이들은 홀연히 이사를 가버렸다. 지금은 지나간 추억의 한토막이지만 처음으로 외국생활을 하던 나에게 당시는 현실적으로 심각한 문제였다. 나중에 일본친구들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일본경찰은 범죄예방 차원에서도 전과자를 철저히 관리하고 이사를 가더라도 따라 다니며 경찰이 사찰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번 전과가 있으면 일본이라는 조직사회에서 활개치고 다니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이웃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경종을 울려서 범죄예방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나는 당시 일본정부 국비유학생 신분으로서 일본경찰이 보호해 주고 특별관리를 해주는 대상일 수도 있다는 지도교수님의 이야기에 안심되기도 했다. 이 일 이후 일본경찰에 대해 신뢰를 갖게 됐고 일본이 치안유지가 잘 되고 있으며, 비록 이 나라 국민은 아니지만 일본정부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범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그리고 약 6년간 일본에 체류하면서 범죄와 사법처리에 대해 사법기관들이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지켜보게 됐다. 그 당시 경제 고도성장기를 구가하던 일본은 우리나라가 1차 오일쇼크로 휘청일 때 휘황찬란한 소비문화로 흥청거리고 있었다. 포르노 영화관과 공연장, 다양한 영상물, 포르노 잡지, 노골적인 상업방송 등이 난무하던 시절이어서 이방인인 우리 눈에는 많은 성범죄가 우려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일본은 자연재해는 자주 발생하지만 인위적 재해에는 예방이 철저한 편이다. 근자에 일어나고 있는 우리나라 성범죄 인명피해와 백가쟁명식 야단법석을 보면서 그때 일본경찰의 범죄예방 활동을 떠올리게 된다.

기우일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법기관이 혹시 범법자들의 해박한(?) 법률지식을 의식해 저항력이 약한 선량한 시민의 생명보호와 행복추구권에 소심하게 대응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될 때가 있다.



/김언현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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