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우레탄 트랙을 돌면서 그저 웃는다. 맨발의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머리까지 상큼하게 전해진다. 혼자서 운전할 때는 더 크게 소리 내어 웃고, 때때로 웃다가 눈물이 나기도 한다. 표정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또 웃는다.

만학도로서 참으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박사논문이 통과 되었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다'는 말을 실감한다.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맨발로 들판에 엎드려 일하고, 산에서 나뭇지게를 지어 나르고, 중풍으로 한꺼번에 쓰러지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던 십수 년 이 흑백사진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내 팔자려니 하고 살았던 날들이다. 내 삶의 비교잣대는 내 어머니와 내 할머니뿐이었다. 그들보다 가난하지 않다는 것만 다행으로 여겼던 그 시절, 한 번도 내 삶이 불행하다 생각지 않았다. 그 세상에 갇혀 딸과 며느리와 어미의 역할 이외에는 생각도 못했다.

우물 안 개구리 같았던 동네를 떠나 내 또래 여성들의 삶과 비교하면서 꿈을 갖게 되었고 오랜 세월 잊혔던 어릴 적 소망을 향해 조심스레 발을 내 디뎠다. 어떤 일도 쉽고 만만하지 않았다. '달리고 있는데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리막길'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힘들 때마다 오르막길이라고 생각했다. 농사꾼의 근면성으로 손톱이 닳도록 살았던 그 시간이 오늘을 길어 올린 마중물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그 서툴고 어설펐던 하루하루를 타박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였던 게 지금 얼마나 다행인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내 인생 곳곳에서 순간의 판단력을 강요받던 수많은 길 위에서 기꺼이 손을 내밀어 동행해준 사람들 덕분이다.

언제나 나를 담금질하도록 동기를 주셨던 분이 시숙어른이다. 여든다섯의 나이에도 베이비부머 관련 기사를 모아서 수시로 메일로 보내주셨다. 청력이 약해지면서 문자나 메일로 소통하는 것이 더 편하다고 하시면서 좋은 글이 있으면 참고하라며 보내주고, 3개월에 걸쳐 일본 교재 한 권을 번역해서 매일매일 보내주셨다. 지난겨울, 몸이 편찮으실 때도 있었으련만 하루도 빠짐없이 한 장씩 번역해서 보내주실 때마다 오늘 하루쯤 쉬고 싶다는 생각을 물리칠 수 있었다. '말로 하니 따지고 몸으로 하니 따르더라'는 말을 절감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시간을 두고 조금씩 줄여나가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을 거라는 믿음을 주신 분이다. 시 아주버님은 여전히 내 인생의 조언자이시다.

직원들이 퇴근한 초저녁부터 논문 집필에 열중하다 시계를 보면 새벽이다. 사무실 주변 환경이 유흥가이다 보니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꺼낼 엄두가 나지 않아 집에 가기를 포기하고 소파에 몸을 웅크린다. 새벽녘, 노래방에서 흘러나오는 고성을 들으며 쏟아지는 잠에 취했던 여러 날들, 한편 고독하기도 하고 한편 허무하기도 했던 밤들이다. 온종일 연필로 스케치한 밑그림을 지우개로 쓱쓱 문대어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로 만들듯이 자판의 딜레이트 키 하나로, 잠을 설쳐가며 만든 문장들이 줄줄이 우르르 달려 나가 벽에 부딪혀 사라지기도 했다. 모래성을 쌓았다가 어떤 힘에 의해 부서지듯 두렵고 막막한 날들이었다. 계란으로 바위 치듯 하다가 억울하다는 생각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 것 같다.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가 어렵다. 가끔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문득 문득 떠오르는 분들께 기도하듯 감사의 마음을 건넨다.

여태껏 그랬듯이 '오늘도 내 생애 최고의 하루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당신의 하루도 최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유인순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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